대부업체는 은행이나 저축은행과 같은 1ㆍ2금융권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서민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여기서도 거절 당하면 이른바 불법 사채 외에는 돈 구할 길이 없기 때문에, 대부업체에 손을 내미는 사람들의 심정은 그만큼 절박할 수밖에 없다.
16일 등록대부업체인 러시앤캐시 본사의 콜 센터를 찾아 서민들의 어려운 주머니 사정을 들여다봤다. 주택 거래가 실종돼 한 달간 계약 한건 못했다는 부동산중개업자, 수강생이 크게 줄어 월세를 못 낸다는 보습학원장, 환율 급등으로 개점 휴업 상태라는 여행사 직원 등 직업만큼 그 사연도 다양했다. 의외로 공무원과 의사, 기러기 아빠 등 중ㆍ상류층 직업도 눈에 많이 띄었다. 그만큼 이번 불황의 여파가 우리 사회 곳곳에 미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네, 네, 고객님,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 도움을 못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
한 상담직원이 벌써 40분째 한 고객의 성화를 받아내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대부신청을 했다가 거절 당한 고객이 상담원을 붙잡고 화풀이를 하는 듯했다. 이쯤 되면 짜증이 날 법도 하건만, 상담직원은 끝까지 전화를 끊지 않고 상대방 얘기를 열심히 들어준다.
상담원 조민경(30) 대리는 "요즘 대부업체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대출승인 거부 역시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며 "은행, 카드, 저축은행, 캐피탈 등에서 모두 거절 당한 뒤에야 대부업체를 찾기 때문에 실망도 그만큼 큰 것 같다"고 전했다.
대출 신청자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어디서도 돈을 빌릴 수 없는 처지에 대한 하소연이 이어지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고객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지 않으면 계속 항의 전화를 하기 때문에, 초기 응대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게 조 대리의 설명이다.
러시앤캐시 콜 센터에 따르면 최근 경기침체로 대부신청 건수가 1년 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실제 대출해주는 액수는 오히려 급감하고 있다(표 참조). 이는 다른 대부업체도 마찬가지다. 업계 관계자는 "대부업체의 경우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은행부터 차례로 대출을 조이다 보니 대부업체도 대출자금이 모자라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단지 대출 신청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그 유형도 다양해졌다. 예전에 압도적으로 많았던 무직자나 학생 비중은 줄어든 반면, 직장인과 자영업자 비중이 크게 늘었다(표). 특히 공무원이나 의사, 대기업 직원 등 전문직 종사자의 대출건수가 지난해 11월 1,450건에서 올해 11월엔 5,000건 이상으로 3배가량 치솟았다.
상담직원 라창현(29) 대리는 "환율이 급등한 이후 전문직에 종사하는 기러기 아빠들의 상담이 많아졌다"며 "그러나 의사 등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는 집 주소나 돈이 필요한 이유 등 신상에 대해 밝히기를 꺼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상담직원들은 자영업자의 고통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한 상담원은 "전화상담을 하던 슈퍼마켓 사장이 요새 물건을 찾는 손님 10명 중 9명에게 '없어요'라고 답하는 게 일상이라고 얘기해 깜짝 놀랐다"며 "팔 물건을 갖다 놓지 못할 형편이니 생계비도 당연히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울적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엔 비정규직 종사자의 상담건수가 늘고 있다. 라 대리는 "비정규직 직원의 경우 기업들의 구조조정 1순위인 탓에 이직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은행들이 무직자가 아닌 이직자에 대한 대출까지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이들의 얘기를 듣다 보면 은행의 대출심사가 지나친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앤캐시의 손보경 콜 센터장은 "은행부터 대출 문을 조이기 때문에 결국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은 대부업체에서도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며 "이들이 불법 사채 등 블랙마켓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은행 대출심사나 대부업체 자금조달 규제 등에서 전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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