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편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잘 할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잘 할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예전엔 어렵게 살았던 사람들은 현재 어렵게 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관심을 보일까. 두 번째 어리석은 질문부터 생각해 본다.
우선 그들의 사정과 상황에 십분 공감하여 돕고 위로하며 함께 부대끼려 들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잡은 고기를 선뜻 나눠 주지만 고기를 잘 잡는 비법을 알려주거나 그물을 빌려 주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그들을 '의지가 약하고 노력이 부족한 존재'로 여긴다. '어려운 형편이란 개인의 노력과 의지로 극복이 가능한 것'이라는 철석 같은 믿음을 갖고 있다. 고기 잡는 비법이라는 것도 스스로의 의지로 개발해야 하고, 자신이 밤새워 새로운 그물을 만들었듯 그들도 그런 노력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어려울수록 경기예측엔 민감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어느 교회에서 했던 '신앙간증'을 감명 깊게 들었고,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TV를 보면서 느꼈던 것이 앞의 뒷부분 생각이었다. 대통령 취임 직후 노사문제에 대한 이런저런 대응에서 그 기억을 확인했던 적이 있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 회사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것인가 묻기 전에, 내가 회사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찾아 노력했다'는 인식이 여전히 많았다. 주변에 있는 국무위원이나 청와대 비서관들 가운데서도 그러한 인식들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형편이 나아진)그들 세대에서 흔한 말로 옛날에 어렵게 살지 않았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난 11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위기에 대비한 사회정책 핵심과제'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했다. 현재의 상황이 1997년 IMF외환위기 때처럼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면 내년에는 생계 유지가 어려운 빈곤층(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경우)이 2006년 10.6%의 두 배인 20.9%로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 중 사회적 보장ㆍ보험을 받는 3.9%를 제외한 17.0%가 사각지대에 빠진다는 경고였다. 내년에 추가될 각종 공공부조제도를 감안한 분석인데, 1,000만 명에 가까운 국민이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으로 아무런 사회적 도움 없이 견뎌야 한다는 얘기다. 놀라운 분석과 전망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토론회 참석자들의 인식이었다. 대부분이 지금 상황을 '제2의 IMF'와 비교한 것은 지나쳤다는 생각이었고, 경제 전망에서도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정부도 국책연구기관의 전망이 너무 심했다고 적잖이 섭섭해 하는 모양이었다. '형편이 지금보다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감'이라는 첫 번째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답은 역시 뻔했다.
어제 아침 한국일보 1면 머릿기사에 문 닫기 직전 상황에 처한 '건설업 하청업체 사장의 1박2일 동행기'가 실렸다. 힘들고 어려운 실상을 보도한다고 한 것인데, 일부 독자들이 "내 경우에 비하면 그 정도는 차라리 낫다"는 반응을 보냈다. 한국일보가 판단하는 지금 밑바닥의 상황은 심리적 면역이 생겼음을 감안하면, 10년 전보다 낫다고 보지 않는다. 그러한 사장이나 독자들을 보면 새로운 17.0% 빈곤층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겠다.
전망치라지만 정부는 대비를
최악의 경우를 가정한 예상이므로 결과는 다를 수 있다. 문제는 17.0%든 1.7%든 정부가 이를 염두에 두고 현실적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느냐에 있다. 대통령과 정부의 속내를 모르지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아마도 경제를 살려놓으면 빈곤층의 급증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만 판단하는 듯하다. 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도움에는 규모보다 중요한 것이 시간과 시기다. 고기 잡는 기술이나 새로운 그물 개발이 중ㆍ장기적으로 효율적인 것은 맞지만, 졸지에 줄어들 것이 분명한 어획량에 대해서도 정부는 대책을 세워놓아야 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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