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나라 안팎에서 굵직한 대국들이 줄을 이었다. 연말이 다가 오면서 국내외 기전이 대부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연유다.
이세돌 이창호 강동윤 목진석 박영훈 원성진 등 랭킹 1위부터 6위까지 국내 바둑계 '빅 6'가 총출동해서 벌이는 국내 기전 타이틀매치와 세계 대회 준결승전 등은 그 중 단연 압권이었다. 명실상부한 국내 최정상급 기사들의 '스타워즈'다.
먼저 월요일(8일), 랭킹 1위 이세돌과 랭킹 3위 강동윤의 제36기 하이원배 명인전 결승 3국. 9일엔 랭킹 5위 박영훈이 랭킹 6위 원성진을 맞아 제13기 GS칼텍스배 도전 3국을, 10일에는 이세돌이 랭킹 4위 목진석을 상대로 제52기 국수전 도전 3국을 가졌다.
또 랭킹 2위 이창호는 중국 강서성 난창으로 날아가 구리 콩지에 등 중국 기사들을 상대로 제7회 춘란배 8강전과 4강전을 벌였다. 이렇게 국내 바둑계 '빅 6'가 서로 뒤얽혀 진검 승부를 벌이다 보니 자연히 희비가 엇갈렸다.
■ 이창호, 춘란배 결승진출 기세
이창호가 가장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9일 춘란배 8강전에서 숙적 구리를 꺾은 데 이어 11일 준결승전서도 콩지에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얼마전 국내 최대 기전인 명인전 동률재대국에서 아쉽게 탈락한 아픔을 말끔히 씻어낸 셈이다.
이창호는 이미 응씨배 결승에도 올라 있는데 세계 대회 우승 상금이 국내 기전보다 훨씬 많은 점을 감안하면 '양보다 질'을 택한 셈이다.
사실 올해 춘란배는 8강전에 중국 기사가 무려 7명이나 올라와 있어 '나홀로' 출전한 이창호와 1대 7의 대결 구도여서 전망이 그리 밝지 않았다.
하지만 이창호는 중국의 인해전술을 헤치고 결국 결승까지 올라가 창하오와 마지막 3번 승부를 벌이게 됐다. 춘란배와 응씨배 결승전은 모두 내년에 열린 예정인데 과연 이창호가 3년만에 다시 세계타이틀을 차지할 수 관심을 모은다.
■ 박영훈, GS칼텍스배 방어 실속
박영훈도 착실히 실속을 챙겼다. 박영훈은 9일 GS칼텍스배 도전 3국에서 원성진을 물리쳐 3대0 스트레이트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박영훈은 이번 승리로 4년째 '도전기 불패 신화'를 이어 갔다.
박영훈은 2005년 제16회 기성전에서 최철한을 3대2로 꺾고 타이틀을 획득한 후 안조영 최철한 백홍석의 도전을 차례로 막아 내며 기성위 4연패를 달성했다.
또 지난해 GS칼텍스배서 이세돌에게 도전해 타이틀을 탈취한 후 이번에 원성진을 이김으로써 타이틀 방어와 함께 지금까지 자신이 치렀던 도전기에서 모두 승리(6전6승)하는 이색 기록을 작성했다.
박영훈은 2008한국바둑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올라 있는 신성건설의 주장을 맡고 있어 챔피언 반지를 하나 더 챙길 가능성도 있다.
■ 이세돌, 명인·국수전 일진일퇴
이세돌은 일진일퇴, 명암이 교차했다. 강동윤에게 결승 1국을 내줘 약간 불안한 출발을 보였던 명인전에서는 2국과 3국을 내리 이겨 전세를 일거에 뒤집고 2대1로 앞서 나갔다.
그러나 목진석에게 2대0으로 앞서 있던 국수전 결승 3국에서는 거의 다 이긴 바둑을 막판 혼전 끝에 역전패, 깔끔하게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세돌은 요즘 워낙 대국이 많기 때문에 승부를 길게 끌고 가는 게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세돌은 이 달 들어 정말 살인적인 대국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1일 낮에 명인전 결승 1국을 두고 그날 저녁에 바로 상하이로 날아가 2일 창하오와 중국 갑조리그 경기를 가졌고 4일에는 다시 베이징으로 옮겨 저우루이양과 또 중국 리그 경기를 치렀다.
그리고 부랴부랴 5일 새벽에 한국으로 돌아와 낮에 명인전 결승 2국을 두었고 다음날(6일) 바둑왕전 본선, 8일에 명인전 결승 3국, 10일엔 국수전 도전 3국을 가졌다. 이뿐 아니다.
다음 주에는 부산에서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3번기가 예정돼 있고 그 다음주엔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에서 명인전 결승 4국(22일), 고향인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천원전 결승 2국(26일)을 치러야 한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올해 대국수가 벌써 94전(70승 24패). 공식 기록에 포함되지 않는 중국 리그 7판까지 합치면 이미 100국을 넘었다. 이런 강행군 속에서도 70%가 넘는 승률을 유지하고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
■ 목진석, 국수전 벼랑끝 회생
목진석은 벼랑 끝에서 다시 살아 났다. 10일 열린 국수전 도전 3국에서 귀중한 1승을 챙겨 일단 한숨 돌렸다. 목진석은 도전 2국에서 거의 다 이긴 바둑을 역전패 당해 많이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거꾸로 불리한 형세에서 마지막 카운터펀치를 날려 이세돌을 쓰러 뜨렸다.
원래 이번 대국은 이세돌의 고향인 비금도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목진석이 싫다고 해 성사되지 않았다. 아마도 목진석로서는 목포에서 열렸던 제1국의 패배가 부담이 됐던 모양이다.
목진석이 일단 위기를 넘겼지만 최근 이세돌이 워낙 강세를 보이고 있어 타이틀 획득 전망이 밝지는 않? 그런 점에서 국수전 도전 4국이 내년(1월5일)으로 넘어갔다는 게 어쩌면 목진석에게 '호재'로 작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세돌이 연말의 빡빡한 대국 일정 때문에 체력이나 집중력에서 허점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원익배 십단전, 맥심커피배, 전자랜드배 왕중왕전에서 계속 준우승에 그쳤던 목진석이 과연 네 번째 정상 도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 강동윤, 명인전 2連敗로 주춤
강동윤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명인전 결승 5번기 첫 판에서 이세돌을 무찔러 좋은 출발을 보였지만 2국과 3국에서 연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목진석과 같은 1승2패지만 이기고 있다가 역전 당했다는 점에서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요즘 스스로 느끼기에도 바둑에 크게 자신감이 붙었다.
실제로 이세돌에게 진 바둑도 내용 면에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명인전과 천원전에서 잇달이 펼쳐지는 강동윤과 이세돌의 10번 승부는 이달 하순에 열릴 예정인 두 판의 지방대국(22일 하이원리조트서 명인전 결승 4국, 26일 비금도서 천원전 결승 2국)에서 승부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 원성진, 우승 문턱서 잇단 좌절
'빅 6' 가운데 원성진이 가장 아쉽게 됐다. 원성진은 원래 명인전에서 본선 리그 종반까지 이세돌과 함께 1, 2위를 달려 결승에 오를 가능성이 높았으나 막판에 이창호에게 지는 바람에 동률 재대국까지 갔고 결국 강동윤에게 결승행 티킷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히 GS칼텍스배 본선 리그 마지막 판에서 동갑내기 친구이자 라이벌인 최철한을 물리치고 도전권을 따냈으나 막상 도전기에서는 역시 동갑인 박영훈에게 내리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동안 각종 기전에서 잇달아 준우승만 하다가 지난해 천원전에서 첫 우승, 드디어 준우승 징크스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이번에도 마지막 한 고비를 넘지 못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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