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준비생은 입사시험에 한 번 떨어질 때마다 친구가 한 명씩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아요. 취직 못한 친구들 만나면 우울해지고 취직한 친구들 보면 솔직히 자괴감도 들고…."
대학 졸업 후 짧게는 4개월, 길게는 10개월간 '백수'의 설움을 톡톡히 겪은 강현묵(27), 김아라(27ㆍ여), 권홍(25ㆍ여)씨. 취업포털 접속으로 시작됐던 이들의 아침이 요즘 출근 준비로 바빠졌다.
이들은 정부가 대졸 미취업자를 대상으로 첫 도입한 '행정인턴'에 선발돼 행정안전부에서 일하고 있다. 비록 길어야 1년의 임시 일터지만, 일과 구직 활동을 병행하며 조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12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이들을 만나 행정인턴과 청년실업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29대 1의 경쟁률 뚫고
취업전선에서 계속 고배를 마시며 세상을 향한 분노가 늘어갈 즈음이었다. '주40시간 기준 월 100만원 지급, 최장 12개월 정부부처 행정실무 경험, 구직활동 지원.' 행정인턴 채용 소식을 접한 이들은 망설임 없이 지원서를 냈다.
정부부처 행정을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이 흔치 않은 기회인데다, 무엇보다 구직 활동을 적극 지원한다는 것에 마음이 끌렸다.
30명 채용에 무려 870명이 지원했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2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광화문에 입성한 30명은 대학원 출신 1명을 포함해 연세대 고려대 이화여대 중앙대 각 3명 등 서울지역 대학 출신 24명과 부산대 등 지방대 출신 6명이다.
중앙대를 졸업한 권씨는 토익 980점,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 등 소위 '고 스펙'(학교 학점 자격증 등 조건) 보유자. "저보다 스펙이 떨어지는 친구도 지난해 대기업에 붙었는데 올해는 정말 어렵더군요. 대학 다닐 때 동아리 활동 같은 경험이 없었던 게 패인인 것 같아요."
조직 경험이 전무한 그에게 이번 행정인턴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다. 각각 이화여대와 명지대를 나온 김씨와 강씨도 "정부부처 인턴에 합격했다니까 부모님이나 주위에서 모두 축하해 주셨다"며 환하게 웃었다.
■ "단순 사무보조는 싫어요"
행안부는 행정인턴 제도를 도입하면서 단순한 사무보조 등을 지양하고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이들은 바로 이 점이 행정인턴의 최대 장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권씨는 행안부 정보화총괄과에서 일한다. 다양한 언어에 능통해 외국사례 자료를 번역하는 일을 주로 한다. 최근에는 직접 계획안을 만들어 제출했다. 내용을 묻자 "기밀이다"며 웃어 넘겼지만, 뿌듯해 했다.
자원관리과에 배치된 강씨는 '비상대비 사이버체험관' 사이트 및 블로그 관리를 맡고 있고, 김씨는 행정인턴제를 주관하는 인사정책과에서 행정인턴 보완책 등을 제안하고 분석한다.
행정인턴들은 특히 일반 기업체와는 달리, 구직 활동에서 상당한 지원을 받는다. 면접이 있는 날이면 최대 5회까지 특별휴가가 주어지고 최종 합격하면 인턴기간은 자동 만료된다. 온라인으로 외국어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이버 교육 및 취업박람회 참여 등의 혜택도 큰 힘이다.
성공적인 직장생활의 관건인 대인관계 등에 관한 조언을 듣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이렇게 행동하면 회사에서 예쁨 받는다' 같이 인간관계의 센스도 잘 가르쳐 주시고 나이 많으신 분을 대하는 법이나 조직 내 위계질서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어요."
■ "내년엔 좋은 직장 잡아야죠"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행정인턴제에서 보완해야 할 점은 없을까. "공무원들이 (저희를) 느리고 답답하게 여길 수도 있겠지만 팀 프로젝트 같은 업무에도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아이디어 내고 자료조사 하고 프리젠테이션까지 하는 전 과정이 실제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인턴기간을 알뜰하게 활용하고픈 이들의 욕심은 끝이 없다.
행안부는 내년에 중앙행정기관에서 대졸 미취업자 2,600명을 채용키로 하고, 각 지방자치단체와 정부산하기관에서도 정원의 1% 범위 안에서 행정인턴을 선발토록 해 행정인턴 채용규모는 최대 8,400명에 달할 전망이다.
"경제상황이 나아지고 청년실업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들이 세워져 취업문이 훨씬 더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내년에는 꼭 취직하고 싶어요." 땅거미가 깔린 오후 6시께 청사를 나선 이들은 취직 준비를 위해 외국어 학원 등으로 총총히 발걸음을 옮겼다.
행안부 박수영 인사기획관은 "취업 준비생들이 인턴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찾는데 필요한 실무역량을 갖출 수 있어 취업 기회가 한층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장재원 인턴기자(이화여대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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