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을 빠져나가는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뒷모습은 쓸쓸했다. 말을 바꾼 북한에 대한 배신감, 자신을 몰아세우는 한국 일본의 강경한 입장이 그의 어깨를 짓누르는 듯 했다. 6자회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 그에게선 이제 북핵 외교 무대에서 퇴장해야 한다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2005년 봄 미국 수석대표로 6자회담에 데뷔한 힐 차관보는 북한 핵 문제가 낳은 최고의 스타 외교관이었다. 끈질기면서도 순발력 있는 협상 태도로 한국의 송민순, 천영우 수석대표와 보조를 맞추며 북핵 해결의 단초를 마련했던 그였다.
그는 자리를 맡은 지 6개월 만에 북핵 해결의 설계도로 불리는 9ㆍ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이후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 제재로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재무부를 설득해 돌파구를 마련했다. 또 지난해 2ㆍ13, 10ㆍ3 합의를 통해 북한 핵 폐기의 토대도 닦았다는 평가다.
평양을 세 차례나 방문했고, 베를린 싱가포르 제네바 등에서 북미 비밀 회동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북한에 지나친 양보를 한다'는 이유로 한미 대북 강경파로부터 '김정힐'이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직급은 차관보에 불과했지만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과 직보, 독대가 가능할 정도로 북핵 문제를 좌우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10월 평양 북미회동 이후 체면을 구겨야 했다. 시료채취를 포함한 북핵 검증체제 구축과 테러지원국 해제를 맞바꿨지만 한 달 만에 북한은 합의 내용을 부인했고, 이번 6자회담에서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힐 차관보로서는 토사구팽 당하는 심정이었다. 북한이 부시 행정부 대신 새로 출범하는 버락 오바마 신행정부와 협상을 하기 위해 4년 가까이 긴밀히 대화를 해왔던 그를 내팽개친 셈이 됐기 때문이다.
외교소식통은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거뒀다면 힐 차관보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차관급으로 승진, 중용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전도가 불투명해졌다"고 전했다.
베이징=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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