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기만 하면 되나요. 뛰어 놀게 만들어야죠."
아줌마들의 수다가 아니다. 중년 남성들의 진지한 대화다. 짐짓 흉내만 내는 게 아니라 고민과 애절함이 묻어난다. 남자가 출산과 육아를 논하는 게 사뭇 어색하고 이상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이 낳고 기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케이크다. 케이크에 장인의 숨결이 들어가겠지만 부드러운 맛과 화려한 장식에 취하기 마련인 케이크에 어떤 육아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케이크 개발자인 CJ푸드빌의 김덕배(40ㆍ투썸플레이스) 김동민(37ㆍ뚜레쥬르) 부장은 "1년에 200명의 자식을 키운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들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는 고슴도치론을 케이크 개발에 적용했다.
김덕배 부장은 중소 제빵공장의 책임자로 있었던 형 영향으로 중2 때부터 케이크의 부드러운 감촉, 매혹적인 데코레이션과 사랑에 빠진 뒤 국내 유명 제빵업체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김동민 부장도 일본에서 5년간 제빵 실력을 키운 실력가로, 케이크 연구에 여념이 없는 열혈맨이다.
두 사람은 케이크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지극한 애정을 쏟으려면 기본부터 챙겨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원료의 특징, 제조기술, 생산라인을 터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기초로 앞으로 태어날 케이크에 대한 상상을 시작한다.
소중한 아기(케이크)의 탄생을 위해 이들은 여러 원료를 먹어보고, 만져보고, 발라보는 과정을 거친다. 카페인 알코올 멜라민 트랜스지방은 멀리하고 천연과일, 유기농 원료들과는 친숙하게 지낸다. 태아가 뱃속에 있을 때 엄마가 몸에 나쁜 걸 먹지 않듯 식재료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
케이크가 세상에 나오면 출산 시처럼 섬세하게 돌본다. 치즈의 맛을 높이기 위해 딱딱한 치즈를 크림상태로 녹여도 보고, 둥그스름한 블루베리를 손톱으로 쪼개도 보고, 틈틈이 직접 그림도 그린다.
장식은 옷 단장에 비유할 수 있다. 늘 직접 내 손으로 옷을 해 입히기가 무리라 원료 제조업체에 통사정 해야 한다. 김동민 부장은 "예를 들어 키스키스 스트로베리 케이크에 들어가는 천연과일은 국내에서는 찾기 힘든 원료라 일본에서 직접 공수해 달라고 제조업체에 부탁한다"고 귀띔했다.
갈수록 까다로와지는 소비자들의 입맛이 맞춰 치즈 하나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 김덕배 부장은 "최근 외국여행과 유학으로 다양한 치즈의 맛을 경험한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춰 까망베르치즈, 그리에르치즈 등 100여 가지가 넘는 치즈를 먹어보고 구해온다"고 전했다.
공들여 키운 아이가 뛰어 놀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 둘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케이크가 소비자들의 입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신제품 출시 후에도 타깃 고객층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나 모니터링을 하거나 전국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 교육, 마케팅전략, 고객반응 등을 수시로 한다.
내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아이가 다른 이의 눈에는 들어오지도 않을 때는 가슴이 아프다. 케이크 역시 사람들의 입맛이 점차 까다로워지고, 다양한 맛을 요구하고, 전문가다운 식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자의 수요와 입맛을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이다. 김동민 부장은 "정성을 다해 만든 제품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으면 달콤한 케이크가 그렇게 씁쓸할 수 없다"고 했다.
케이크를 낳고 기르는 아빠인 탓에 두 사람은 지방간도 늘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높아 고지혈증까지 앓고 있다. 일종의 직업병으로 육아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꼴이다. 둘은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포장된 케이크 개발자의 세계는 수박의 겉만 핥았지 한시라도 맘을 놓을 수 없는 가슴앓이 같은 애환은 담아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케이크를 하루에 수없이 먹어야 하는 일도 고역이다. 케이크 맛이 입안에 진이 배 다른 음식을 먹어도 케이크 맛이 날 정도라고 했다. 세상의 수만 가지 케이크와 경쟁하기 위해선 일단 케이크를 먹어봐야 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케이크 종류도 늘어나고, 소비자의 입맛도 까다로워지면서 항상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추구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호소했다.
그래도 뿌듯하다. 생일 승진 사랑고백 등 인생의 달콤한 날들과 함께 하는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누가 뭐래도 행복하다. 소중한 자리에 그들이 만든 케이크가 없다면 얼마나 썰렁할까.
김덕배 부장은 "충족해야 할 것이 늘어나 책임감과 부담감도 커졌지만 기쁨을 전해주는 매개체인 케이크를 만드는 일은 축복"이라고 했다. 내조를 아끼지 않으니 힘이 절로 난다.
두 사람은 소망이 있다. 현재는 비록 한 기업에 소속된 처지지만 언젠간 자신들의 이름을 건 빵집을 차리는 것이다. 대기업이 만든 케이크는 브랜드 덕에 신뢰와 안정성에 좋은 환경을 제공 받을 수 있지만 기성품이라는 한계가 있다. 반면 개인 빵집은 다양하면서도 독특한 나만의 케이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특별한 케이크를 선사하고 싶습니다." 두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오늘도 부드러운 안감에 번드르르한 갈색 비단옷을 입고, 빨간 브로치를 단 예쁜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케이크 아빠(개발자)의 육아일기
-출산계획: 1년에 최소 200개
-출산준비 :일일 최대 12번 시식회, 시식회마다 4, 5개 새로운 케이크 맛보기. 끊임없이 먹고, 연구하고, 기획하라
-잉태: 제품기획, 제품 디자인 구상, 테마 정하기. 타깃 고객 설정
-탄생: 직접 제품 만들어보기, 원료 공수하기
-육아 1단계 : 부족한 맛 개선, 어울리지 않는 맛 보완하기, 디자인도 다양하게
-육아 2단계 : 만들어진 제품 사내 유관부서(마케팅, 영업, 생산)와 함께 시식회
-육아 3단계 : 고객테스트와 제조공정서 작성, 원료 및 제품 안정성 검증서 제출
-육아 4단계 : 품질 및 고객반응 체크
강지원 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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