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세무공무원 A씨는 전직 약사 B씨의 체납 주민세 2,000만원을 받아내느라 여러 달 진을 뺐다. 처음부터 난관이었다. B씨 재산은 모두 담보로 잡혀 있었고, 주소지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수소문 끝에 B씨가 시내의 약사 유학 알선업체에서 일한다는 정보를 입수, 급여 압류를 통지했지만 "월급 준 적 없다"는 회신만 왔다. 미심쩍어 사무실을 방문했더니 예상한대로 B씨 친척이 서류상 대표를 맡은 B씨 소유 업체였다.
숨겨놓은 재산은 찾아냈지만 B씨의 행방은 묘연했다. 어렵게 접촉한 친지를 통해 연락을 취한 뒤에야 미국 출장 중이라는 B씨 명의로 "매달 50만원씩 세금을 내겠다"는 팩스가 왔다.
하지만 얼굴 없는 체납자가 보여준 성의는 그뿐이었다. 결국 납부 계획을 지키지 않는 B씨의 사무실에 압류 딱지를 붙였고, 그제서야 그의 부인이 나타나 밀린 세금을 치렀다.
고액 상습 체납자들의 세금 회피 수법이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타인 명의 사업, 허위 주소지 설정, 위장 이혼 등 전통적 방법은 물론, 예금 쪼개기, 개인금고 활용 등 법망의 허점을 노린 신종 재산 은닉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이런 비양심 체납은 국세보다 지방세의 경우 더 심하다. 자치단체의 행정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그 중 예금 쪼개기는 올해 개정 시행된 국세징수법 및 관련 법령의 빈틈을 파고든 수법이다.
지방세 징수에도 준용되는 새 법령은 체납자의 기본 생계를 위해 잔액 120만원 미만의 예금을 압류할 수 없도록 했는데, 이를 악용해 금융 자산을 120만원 미만으로 분할 예치하는 체납자가 점차 늘고 있다.
한 지방 세무공무원은 "특히 체납액이 1,000만원 미만인 경우는 은행 본점을 통한 일괄적 예금 조사를 할 수 없어 지점을 일일이 뒤져야 하는데 사실상 적발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놨다.
금융실명거래법 적용을 안 받는 은행 대여금고에 재산을 숨기는 일도 적지 않다. 서울시 세무과 관계자는 "체납자가 가족 등의 명의로 개인금고를 개설할 경우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타인에게 재산 관리권을 위임하는 신탁(信託)제도로 재산을 빼돌리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 건물을 건축부터 매도까지 신탁으로 처리하면 압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악용되고 있다.
부동산을 제3자에게 경매로 넘긴 뒤 자녀에게 되팔게 하거나, 부인 명의로 재산을 돌려놓은 뒤 위장 이혼을 하는 것은 자주 활용되는 고전적 수법에 속한다. 1년에 3회 이상 500만원 넘게 체납하지 않으면 형사고발 되지 않다 보니 주민세ㆍ자동차세를 수천만원씩 안내고 버티는 사람도 많다.
이 때문에 세금 체납액은 해마다 크게 늘고 있다. 국세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만 8조503억원의 신규 체납액이 발생, 연말엔 지난해의 14조6,481억원을 웃돌 전망이다. 지방세 체납액도 지난해 말보다 1조원 이상 증가했다. 경기불황으로 인한 '생계형 체납'이 늘어난 탓도 있지만, 고의적 체납이 더 큰 요인이다.
올해 8월 현재 지방세 체납액 4조2,760억원 중 납부능력이 없어 발생한 액수는 8,045억 원인데 비해 납세 기피형 체납은 1조3,404억원이다. 납세자 행방이 파악 되지 않는 체납액도 3,268억원이다.
경기 부양을 위한 재정 확보가 시급한 만큼, 체납 세금을 효과적으로 받아낼 법ㆍ제도가 속히 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 안양시 만안구청 김화숙 팀장은 "지방세 징수를 담당하는 시ㆍ군ㆍ구청은 국세청과 달리 계좌ㆍ소득 추적권이 없고, 채권 확보 때도 국세보다 후순위로 밀려 애로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임언선 조사관은 "세금 고지 후 체납자로 분류될 때까지의 기간 중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를 봉쇄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체납액 기준을 현행 5,000만원보다 낮추는 등의 관련법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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