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화는 지금 각계각층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중 하나이다. 새 정부의 정책 슬로건도 선진화이다. 한 때는 민주화라는 말이 온갖 곳에 붙어 다녔다. 이제는 그 약발이 많이 떨어졌는지 전에처럼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선진화라는 말이 여기저기 붙어 다니고 있다. 용어 사용도 유행이 있는 모양이다.
국민소득도 높아져야 하지만
선진화가 좋은 말인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합의된 의견이나 공감대 같은 것이 만들어져 있지 않다. 막연히 생각하면 국민소득을 높이는 것이 선진화일 것 같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는 정도의 소득수준이 선진국이며, 1인당 GDP가 2만 달러라고 보는 한국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일까? 우리가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우리가 지금의 선진국 수준에 다다르면 그 나라들은 앞으로 더 나아가 있을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와 같이 선진화나 선진국이라는 말은 그렇게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지금 지구 상에서 선진국이라고 여겨지는 나라는 거의 모두가 구미 국가이다. 서유럽과 미국이 자타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일본이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 이 나라들은 지금 1인당 GDP가 4만 달러 내외이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지금의 2배가 되어야 선진국에 다다를 수 있다. 지금 사정으로 볼 때 매우 지난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 더 파고들어 가보면 소득 수준만이 선진국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아니다. 이 나라들은 1인당 GDP가 2만 달러일 때도 이미 선진국으로 불려왔다. 그것은 소득만이 선진국을 매김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선진국이란 선진국다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인간 생활의 각 부문이 선진국다워야 선진국 대접을 받는 것이다.
따라서 선진화란 인간 생활의 각 부문을 선진국답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소득수준은 이를 위한 하나의 필요조건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의식 수준이다. 국민수준이 선진화되어야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일부 산유국은 1인당 GDP야 선진국 수준이지만 선진국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소득 수준만으로는 선진국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선진국에 가 보면 우선 느껴지는 것이 신뢰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수준 높은 시민의식이다. 개개인이 남을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시민의식이 매우 돋보인다. 그리고 상호간의 신뢰가 매우 높다. 남을 속이거나 경계하는 정도가 매우 낮다. 공중 질서도 잘 지킨다. 이런 사회는 사회 운영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쉽게 말하자면 그런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이다. 이런 사회가 바로 선진국이다. 우리도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여야 한다.
상호 신뢰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진 시민을 길러 내면 부정부패도 사라지고 난장판 국회도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노력한 만큼 거두고 그것에 만족하는 사회가 된다. 국민의 불만도 최소화된다.
더 중요한 건 선진시민 만들기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국민 스스로가 선진시민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희망이 없다면 새 세대에서라도 이런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그것도 유아교육이 중요하다. 시민 의식의 기본은 초등학교까지의 유아기에 결정되기 때문이다. 유아기의 교육은 지식 교육보다 시민 교육이 더 앞서야 한다. 교육을 통해 새로운 선진 시민을 길러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소득도 어느 선을 넘어서면 사람 수준의 향상 없이는 더 이상 증가할 수 없다. 더 증가한다면 그것은 졸부일 뿐이다. 지금 단계에서는 소득성장보다 선진 시민을 만드는 일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국민소득도 계속 성장할 수 있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