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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식들의 '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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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자식들의 '빨대'

입력
2008.12.1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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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송년회를 겸한 소설가 동인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다양한 화제가 나왔지만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독립하지 않고 버티는 자녀를 둔 부모들의 애환이었다. 석사과정까지만 다니는 줄 알았더니 박사과정을 또 다니겠다는 딸.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오더니 휴학하겠다는 아들. 이뿐 만이 아니었다. 학벌이 딸린다며 학사 편입을 하겠다거나 전공이 좋지 않다며 복수 전공을 하겠다는 자녀들의 이야기가 자식 둔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된 고민 거리였다.

나는 그것을 '빨대'라고 표현했다. 그거 재미있다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가만 보면 인간관계는 누군가의 목에 빨대를 꽂느냐 꽂히느냐로 압축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자식들조차 성장해서 제 앞가림을 하지 못하면 결국 부모의 목에 빨대를 꽂아 고통을 주게 된다.

한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나 역시 그런 경우를 많이 보았다.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학생이 강의실에 들어오길래 몇 학년이냐고 물었더니 4학년인데다가 나이는 서른 살이라는 거다. 내 나이 서른 살이면 공부를 마쳤고, 결혼해서 아들을 하나 낳았으며, 작지만 방 두 개 짜리 전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은 아직도 대학 4학년이었던 거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편입을 했을 뿐 아니라 군복무도 마치고 휴학했다가 어학연수 등등으로 졸업을 최대한 미루고 있는 친구였다. 부모에게 오래도록 빨대를 꽂는 전형적인 경우였다.

이처럼 상당수 청년들이 취업난과 고학력 인플레, 그리고 경쟁력 강화와 자기계발 등의 명목으로 졸업을 늦출 뿐만 아니라 대학원이라든가 해외 어학연수 등등으로 사회진출을 어떻게 해서든지 미루려 하고 있다. 일부 부모들은 또 거기에 영합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좋은 학벌, 조금이라도 나은 '스펙'을 확보하게 해주려다 보니 앞서 말한 것처럼 빨대가 꽂히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번식기에는 어미가 새끼에게 열과 성을 다해 먹이를 물어다 나르는 걸 본다. 끊임없이 배고프다고 입을 벌리는 그 새끼들을 먹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어미들의 감동적인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은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는 분명했다. 목숨 걸고 새끼들을 기르는 동물들이지만 어느 순간 새끼들에 대한 지원을 단호히 끊을 줄 안다.

그래서 그날 우리 모임의 마무리는 자식들의 빨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였다. 이왕 꽂히는 거 최대한 작은 빨대에 꽂히도록 노력하자, 꽂힌 빨대는 최대한 빨리 빼도록 애쓰자, 목에 철판을 여러 겹으로 대자, 나도 누군가의 목에 빨대를 꽂아 벌충하자, 독거 노인이 될지 모르지만 아예 다 빨려서 더 이상 빨아먹을 게 없게 해버리자……. 재미있다고 웃었지만 문제는 심각했다.

배는 험난한 바다를 항해하도록 만들어진 것이고, 야생마는 거친 들판을 달리도록 태어난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은 결국은 이 험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들이다. 그런 아이들을 끌어안고 전전긍긍 하며 부모의 사랑과 뒷바라지라는 미명하에 자식들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국 공멸하는 길로 가서는 안 된다.

부모 자식의 관계는 필경 개체 대 개체의 관계다.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무한히 줄 수 있는 것은 심정적인 응원과 격려뿐이지 않은가.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껍데기만 남은 채 연명하며 살기에는 우리의 노후가 너무너무 길어졌다.

고정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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