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검증과 비핵화 2단계 조치 마무리를 위해 개최된 6자회담이 사실상 결렬된 상태로 끝났다. 현재로서는 6자회담의 공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한ㆍ일이 검증과 대북지원의 '포괄적 연계' 입장을 고수할 경우에는 북한이 불능화 중단으로 맞서 북핵 상황이 '2.13 합의' 이전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으로 미국과 북한은 상당한 외교적 상처를 입었다. 임기 말 치적에 목마른 부시 미 행정부는 초라한 북핵 외교 성적표를 들고 퇴장하게 됐다. 북한도 이례적인 5대 1의 6자회담 구도 속에 검증의정서 채택이 무산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회담의 허무한 결과로 6자회담의 미래도 불투명해졌다. 당장 이번 회담에서 외교적 고립을 절감한 북한이 6자회담을 회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평양으로부터 "어렵게 성사된 조ㆍ미 간의 평양 합의를 무력화시키는 6자회담에 계속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식의 반응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정권 교체기여서 6자회담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형편이다. 오바마 차기 행정부도 6자회담의 유용성을 인정하긴 하지만 '터프하고 직접적인' 협상은 역시 북ㆍ미 양자 협상이다. 당연히 6자회담의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6자회담을 공식 발표하지 않고 회의장을 축소한 것은 6자회담이 북ㆍ미 협상의 이행기구로 전락하는 데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예상과 달리 높은 수준의 검증 초안을 회람시킨 것도 북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6자회담의 전체 구도를 좌우하는 의장국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회담이 결렬됨에 따라 6자회담의 동력이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한ㆍ일은 검증과 대북지원을 연계함으로써 6자회담을 불명확한 평양합의를 바로잡는 장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검증문제를 '진실게임'에서 구해낼 수 있었으나 6자회담을 구하지는 못했다. 어느 모로 보나 당분간 6자회담의 미래는 밝지 않다.
그래도 6자회담은 계속되어야 한다. 6자회담은 북핵 문제 때문에 시작되었지만 북핵 문제를 넘어동북아의 미래를 여는 역사적 기회의 창이기 때문이다. 2005년 '9.19 공동성명' 채택 협상이 한창이던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우리 외교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의 공간이란 인상을 받았다. 6자회담 참가국들의 국력을 합치면 경제력은 세계 GDP의 절반, 군사력은 70~80%에 육박한다. 그런 역사적 현장에 우리가 함께하고 있다.
6자회담은 북핵 협상에서 우리의 역할을 보장하는 의미 있는 틀이기도 하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경색 상태에서도 6자 틀 내의 남북 접촉에 응했던 것은 경제· 에너지 실무회의 의장국으로서 우리의 역할 때문이다. 앞으로 북미 간의 터프하고 직접적인 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역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6자회담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원칙한 합의보다는 결렬이 낫다는 주장도 있지만, 6자회담 결렬은 분명 좋은 소식이 아니다. 북핵 협상의 결렬은 북핵 문제 진전이 부담스러운 일본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번 6자회담은 미국에게는 외교적 좌절을, 북한에게는 외교적 비난을, 중국에게는 외교적 무력감을, 우리에게는 외교적 역할 축소 우려를 안겨 주었다. 그러나, 6자회담이 결렬되었다고 막연히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기다릴 때가 아니다.
6자회담은 다시 재개되어야 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결렬이 아니라 타결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 것이 6자회담을 살리고 6자회담 참가국들의 역할 공간을 확보하는 길이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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