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벌써 1,000회입니까. 제 딸이 태어나기 전에 이 프로그램을 했는데, 딸이 고교 2학년입니다. 대학 갈 때까진 해야 합니다."(이경규)
"제가 1,000회 중 절반에 가까운 438회에 출연을 했어요. 총 23개 코너를 했는데, 기억 나는 게 왜 5개밖에 없지."(김용만)
지난달 27일 오후 일산 MBC드림센터.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 1,000회 특집 '왕들의 귀환'(14일 오후 5시10분 방송) 녹화현장에 모인 대한민국 스타 MC들의 화려한 입담이 시작됐다.
온 에어(녹화 시작) 불빛이 뜨자마자 빵빵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이들의 천연덕스러운 유머는 감동과 눈물, 웃음이 범벅된 '일밤' 2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역대 일밤 MC 63명 중 인기코너를 이끌며 주목을 받았던 이경규, 김용만, 김국진, 박수홍, 이휘재 등 15인을 만나 일밤의 역사를 되짚어봤다.
■ 버라이어티의 원형
1988년 11월27일 첫 방송 후 1,000회를 맞기까지 일밤은 버라이어티쇼 장르를 개척하고 뿌리내린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으로 평가할 수 있다.
코미디 드라마 형식을 차용한 '인생극장', 리얼 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2002년 한일월드컵 현장을 중계한 '이경규가 간다', 스타 실험 카메라의 원조 격인 '몰래카메라', 시청률 50% 기록을 달성한 퀴즈쇼 '브레인 서바이벌' 등의 코너는 각종 버라이어티의 원형을 제공했다.
"'브레인 서바이벌'은 집단 퀴즈 토크쇼로는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퀴즈를 풀면서 출연진의 사적인 이야기를 토크쇼 형식으로 푸는 식이었는데, 새로운 시도였으니까 시청자분들이 좋아하셨어요."(김용만)
"'김국진의 철인경기'라는 리얼 버라이어티쇼가 있었어요. 100m 달리기를 하는데 국가대표 육상 선수랑 개와 닭, 그리고 제가 같이 뛰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기가 막힌 촬영이죠. 결과요? 개한텐 지고, 닭한텐 이겼어요."(김국진)
■ 공공의 이익을 웃음 코드로
일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공익과 예능의 접목이다. 일밤은 당시 예능 프로그램으로선 파격적으로 소외계층과 소시민의 공익을 재미의 주요 원천으로 삼았다.
소외계층에게 집을 지어주는 '러브하우스', 교통규칙을 지키는 시민들에게 냉장고를 선물하는 '양심 냉장고' 등이 대표적이다. 이 코너를 통해 가족 프로그램으로 발돋움한 일밤은 향후 '느낌표' 등 본격 공익 프로그램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러브하우스 2'는 제가 방송을 하는 데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준 코너예요. 2004년쯤 해남 땅끝마을의 한 섬에 사는 출연자를 방문했는데 절벽 끝으로 금방 추락할 것 같은 집을 개조했었어요. 그분들한텐 기적이잖아요. 뿌듯하죠." (박수홍)
■ 격세지감 20년
일밤은 20년의 세월 동안 '원조'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대형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일밤을 오랫동안 지켜오고, 지켜봤던 MC들은 모든 세대를 겨냥한 국민 오락 프로그램이 변질되진 않을까 우려도 나타냈다.
"요즘 '우리 결혼했어요'나 '세바퀴(세상을 바꾸는 퀴즈)' 등의 코너를 보면 젊은층이나 아줌마 등 특정 계층의 마니아들을 겨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세대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정말 치밀하게 기획하고 준비해서 공통의 웃음코드를 찾아야 해요. 힘든 작업이죠."(이경규)
●역대 MC들의 '말말말'
이혁재 : "9시 뉴스에 나왔어요"
"도로에서 빈 택시와 17만원을 발견했는데, 좀더 걸으니 시체가 나오는 거예요. 바로 경찰에 신고했죠. (그 사건이) 9시 뉴스에 나왔어요. (제가) 용의자 1순위 될 뻔했어요." (국토대장정)
이휘재: "혜수씨, 실은 때밀고 왔어요."
"김혜수씨랑 수중키스신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신인이라 무지 떨렸죠. 먼저 현장에 도착했는데 몸에서 때가 막 나는 거예요. 어찌나 당황했던지 빨리 씻고 촬영 들어갔죠." (인생극장)
조형기: "뭐 이런 프로가 다 있나 했지."
"컴퓨터 자판으로 답을 치라고 하는데 난 컴퓨터세대가 아니잖아. 뭐 이런 프로가 다 있나, 홧김에 술을 마셨는데 술이 덜 깨서 횡설수설 고등학교 교가를 부르고 그랬던 거야." (브레인서바이벌)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강유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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