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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 이웃사랑 나누는 천안 윤해철·재필씨/ '30년 기부' 아버지에 '헌혈왕'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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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 이웃사랑 나누는 천안 윤해철·재필씨/ '30년 기부' 아버지에 '헌혈왕' 아들

입력
2008.12.12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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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이다. 짙은 눈썹에 순박한 웃음만이 아니다. 환경미화원 아버지는 돈 대신 어려운 형편에도 베풀고 나누는 따뜻한 마음을 물려줬고, 틈틈이 아버지의 손수레를 끌어주며 자란 아들은 그 마음을 '재산목록 1호'로 꼽는다.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환경미화원 출신 윤해철(65)씨와 천안시청 직원인 아들 재필(40)씨 이야기다. 30년을 이어온 이들 부자의 대물림 이웃사랑은, 다들 제 살림 챙기기도 팍팍해 남 돌아볼 겨를이 없는 요즘 한결 빛이 난다.

윤씨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한 28년 동안 얄팍한 봉급을 쪼개고 폐품을 모아 아동보호시설 익선원의 어린이 8명을 이들이 사회에 진출할 때까지 보살폈다. 2004년 퇴직 후 벌이가 전혀 없을 때도 후원을 멈추지 않았다.

지금은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버는 100만원에서 최소 생활비만 남기고 아동과 나환자 보호시설에 후원금으로 보낸다. 그는 "평생 거리의 쓰레기를 치우며 살았는데, 작은 힘이나마 어려운 이웃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을 쓸어내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윤씨의 이웃사랑 실천은 신문에 난 작은 기사에서 시작됐다. 1979년 여름, 여느 때처럼 새벽청소를 나선 그는 길에 버려진 신문에서 부모 잃은 초등학생 남매와 일흔의 할머니가 어렵게 살고 있다는 기사에 눈길이 머물렀다. 소작농 집안의 7남매 중 여섯째로 어렵게 자란 그는 남매의 안타까운 사연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두 달간 업무를 마친 뒤 폐품을 모아 판 돈과 아내 김복순(65)씨가 과수원에서 일하고 받은 품삯에 어린 아들의 돼지저금통까지 털어 3만원을 남매에게 전했다. 당시 윤씨 부부와 삼남매는 사글세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월급은 5만원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매달 월급의 10%를 떼어 익선원 후원을 이어왔다.

윤씨는 처음 결연을 맺은 김모(43)씨를 친딸처럼 여긴다. 결연 당시 중학생이던 김씨가 1991년 결혼할 때 그는 친정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 강원 화천에 살고 있는 김씨는 명절이면 남편과 함께 윤씨 집으로 친정나들이를 한다.

윤씨는 "딸아이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갈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지금도 딸의 결혼사진과 편지를 보면 더 많이 해주지 못해 마음이 울컥한다"고 말했다.

"없는 살림에 누굴 돕느냐"며 성화를 했을 법도 한데, 아내 김씨는 말없이 남편의 선행을 거들었다. 과수원에서 날품을 팔던 김씨는 후원금 보낼 날짜가 다가오면 남편 손에 품삯을 쥐어줬다.

주말에 남편이 말도 없이 후원아동과 나환자시설 어린이를 집에 데려오면 웃는 얼굴로 밥상을 차려냈다. 명절에는 남편 모르게 옷가지와 학용품을 아이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아들 재필씨도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선행 길을 뒤따랐다. 방과후와 주말이면 시키지 않았는데도 아버지를 돕겠다며 청소 손수레를 끌었다. 아버지가 후원금을 보낼 때면 돼지저금통을 털어 보탰다.

중ㆍ고교 때는 아예 손수레를 직접 끌고 성환읍내를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고 폐품을 모았다. 군에 입대 해서도 월급을 아껴 후원기관에 보냈다.

재필씨는 천안에서 '헌혈짱'으로 통한다. 공무원이 된 뒤 어릴 때처럼 아버지를 돕지 못하게 된 그가 꾸준히 따듯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도로 찾은 것이 헌혈이다.

물론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 나환자시설 등 후원도 한다. 95년부터 매달 두 차례 헌혈을 해온 그의 헌혈기록은 무려 246회. 헌혈증서는 주위의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20장만 보관하고 있다.

재필씨는 "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씀씀이는 우리 형제들에게 산 교육이 됐다"며 "아버지께서 연세 들고 경제력이 떨어져 마음만큼 후원을 하지 못해 안타까워 하시는데, 그런 아버지를 대신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천안=글·사진 이준호기자 junh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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