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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다향 굴구이·어리굴젓·새조개… 천수만 '겨울味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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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바다향 굴구이·어리굴젓·새조개… 천수만 '겨울味樂'

입력
2008.12.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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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이 퍼붓고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 얼어붙은 땅이 모처럼 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바다는 뭍이 못다한 생산을 떠맡은 듯 쉴 새 없이 실한 먹거리를 토해낸다.

차진 겨울이 오길 기다려 온 바다가 있다. '바다의 호수'라 불리는 천수만이다. 서해로 뭉툭 솟아나온 태안반도의 밑자락으로 기다란 안면도가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물은 언제나 멈춘 듯 고요하다.

이렇게 가둬진 천수만 바다는 천혜의 산란지다. 생명의 원천인 뻘을 품고 있고 물살이 잔잔해 물고기들이 새 생명을 잉태하는 데 제격이기 때문이다.

태평양의 수많은 물고기들이 이곳을 산란 장소로 삼고 있어 천수만과 그 입구 주변은 물 반 고기 반의 최대 어장이다. 지난해 태안 유조선 침몰 재앙도 안면도가 고스란히 막아줘 천수만은 안전했다.

■ 보령 천북 굴구이

천수만의 겨울은 갯벌에서 시작된다. 찬바람이 불수록 굴 내음은 싱싱해지고 손이 시릴수록 주민들 손길은 바빠진다. 천수만에 겨울이 찾아들면 충남 보령의 천북 굴구이 단지에선 '펑펑' 껍데기가 터지며 굴 익는 소리가 진동한다.

천북면 장은리의 천북 굴구이 단지에는 바다를 끼고 90여 채의 굴구이 집이 죽 늘어서 있다. 간이 건물의 포장집 안을 들어서면 바닥에는 가스불에 올려진 석쇠들이 늘어져 있다. 의자를 끌어와 앉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굴 한 바구니와 목장갑, 과도 만한 칼을 건네준다. 주먹 만한 굴을 껍질채 불에 올려 익혔다.

손님들이 몰려들며 주변이 떠들썩해졌다. 간만의 나들이에 들뜬 일행이지만 굴이 익기 시작하자 차츰 말수가 줄어든다. 오로지 굴에만 전념하는지, 굴 까 먹는 소리만 들려온다.

여기저기서 펑펑 굴 껍데기 터지는 소리에 사람들이 놀라자 천북굴축제 위원장인 천북수산의 박상원(54) 사장은 "굴이 원래 시끄러워유. 굴이 나 잡아 먹어라 소리치는 거유. 안 터지면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모르잖유"라며 살갑게 설명을 한다.

굴이 마침내 조금씩 입을 벌리기 시작하면, 장갑 낀 손과 칼로 뜨거운 굴 껍데기를 벌려 가며 흰 김 오르는 속살을 발라낸다. 초고추장 살짝 찍어 먹으니 생굴과는 또 다른 맛이다. 생굴보다 훨씬 부드럽고 달큼하며, 무엇보다 비릿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굴 까는 손길은 더욱 바빠지고, 금세 바구니는 빈다. 많이 먹으면 조금 역겨운 맛이 나는 조개구이와 달리 이 곳의 굴은 아무리 먹어도 물리질 않는다.

박 사장에게 굴구이 맛있게 먹는 방법을 물었다. "특별한 건 없슈. 그냥 소주랑 같이 먹어야 제맛이쥬. 인상 쓰고 굴만 파 먹으면 많이 못 먹어유.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웃으며 먹어야 굴도 맛나게 잘 넘어가유."

이 곳에 굴구이 단지가 형성된 것은 10여 년 전부터다. 민물이 적당히 흘러드는 천수만의 바다는 예로부터 굴로 유명했다. 추울 때 이뤄지는 굴 채취 작업은 주로 아낙네들의 몫이었다.

한겨울 바닷바람에 언 몸을 녹이기 위해 그들은 모닥불을 피웠고, 허기를 달래보려 그 불에 굴을 껍데기채 올려 구워 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알음알음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지금의 천북 굴구이 단지가 만들어졌다. 마을 골짝골짝에 흩어졌던 굴구이 포장마차들이 홍성 방조제 완공 이후 지금의 자리에 군락을 이루게 됐다.

굴구이는 맛도 맛이지만 저렴하게 배불리 즐길 수 있어 좋다. 4,5인용 굴구이 한 바구니가 2만5,000원. 굴에 피조개 소라 가리비 등을 곁들이는 모둠조개구이가 1kg에 1만원. 술 먹은 속을 시원하게 씻어 주는 굴물회는 2만원이고 굴밥은 7,000원, 굴칼국수는 4,000원이다. 천북수산(041-641-7223) 등 굴구이집에선 집에서 굴구이를 즐길 수 있도록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

■ 홍성 남당항 새조개

천북에서 방조제만 건너 가면 많은 이들이 맛의 항구 '미항(味港)'으로 손꼽는 홍성 남당항이다. 포구의 바다와 나란한 좁은 도로를 따라 횟집들이 빼곡이 들어서 있다. 남당의 가을을 대하가 책임진다면 남당의 겨울은 새조개 철이다.

야구공보다 약간 작고 뭉툭한 새조개는 속살의 발이 새의 부리를 닮았다 해서 그렇게 불린다. 11월부터 3월 말까지가 제철로 수심 5~35m의 뻘과 모래가 섞인 곳에서 자란다.

형망틀을 이용해 배가 끌면서 뻘 바닥을 긁어 건져 올린다. 양식이 불가능한 100% 자연산으로 나는 곳이 한정돼 있고 맛이 뛰어나 값이 높다.

새조개를 먹는 방법은 크게 3가지다. 날것 그대로의 회와 매콤한 양념무침, 그리고 샤브샤브다. 샤브샤브는 팽이버섯, 무, 대파와 바지락 몇 알로 국물을 낸다.

내장을 제거한 새조개를 끓는 육수에 살짝 담갔다 꺼내 물면 연한 속살의 부드러움이 스르르 입안을 녹인다. 갯냄새도 나지 않고 달콤하다. 은근하고 고급스러운 그 맛에 '조개의 명품'이란 칭호를 듣는다.

■ 서산 간월도 어리굴젓

천수만의 맨 위쪽, 서산 부석면의 간월도는 예로부터 이름난 굴 생산지다. 11월 중순부터 주민들은 굴 채취 준비에 들어간다. 어촌계에서 작업날 받기를 기다린 주민들이 장화와 조세(나무막대에 쇠꼬챙이를 박은 굴 따는 도구)를 들고 물때에 맞춰 들어가 굴을 채취한다.

굴 따기 작업은 주로 간월도리 어촌계에 속한 60여 가구의 토박이 할머니들 손으로 이뤄진다. 질퍽이는 뻘밭에서 허리를 굽히고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몇 시간씩 버텨야 하는 고된 노동이다.

이렇게 생산된 굴은 어촌계 작업장에 모아져 특유의 매콤한 어리굴젓으로 태어난다. 고춧가루를 넣어 '어리어리한 맛'이 나기 때문에 어리굴젓으로 불린다. 간월도 어리굴젓에 들어가는 거라곤 소금과 고춧가루뿐이다. 간월도 어리굴젓은 일찍이 그 맛을 인정받아 임금님 수랏상에도 올랐다고 한다.

천수만=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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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만의 정겹고 고즈넉한 풍광… 입만큼 눈도 '감탄사'

천수만의 맛으로 배가 불렀으면 주변의 풍광도 함께 둘러보자.

천북에서 15분 거리인 보령 오천항은 키조개의 우리나라 최대 생산지다. 오천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나지막한 야산에는 조선시대 충청수영이 자리잡았던 오천성이 있다.

지금은 약 1km의 성벽과 서문인 망화문, 어려운 백성을 돌보던 진휼청, 장교 숙소였던 장교청 등만 남아 있다. 홍예만 남은 망화문을 지나 성벽을 따라 진휼청 앞에 서면 고깃배들이 둥실 떠있는 오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천항에서 남쪽으로 2km가량 달리면 1866년 천주교 박해 때 처형된 순교자를 기리는 갈매못 성지가 있다.

보령의 성주산과 보령호 주변으로의 드라이브도 권할 만하다. 보령 시내를 벗어나 성주터널을 지나면 갑자기 딴 세상에 온 듯 성주산의 풍광이 펼쳐진다.

통일신라 시대의 큰 절이 있었던 성주사지에는 탑과 석등, 비석들만 남아 있어 폐사지가 주는 적막함 속으로 침잠할 수 있다. 웅천을 댐으로 막아 만들어진 보령호 주변은 수면에서 노니는 철새를 구경하며 한가로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제격이다.

상황리 전망대나 궁리 포구에서 보는 일몰 또한 장관이다. 수평선에 바짝 엎드린 안면도 위로 시뻘건 햇덩이가 넘어가는 모습이 장엄하다.

한용운 선생 생가와 김좌진 장군의 생가가 남당항 가까이 있어 함께 둘러볼 만하다. 홍성읍에는 옛 홍주성 성곽의 절반 이상이 보존돼 있다. 옛 관아 터에 자리잡은 홍성군청에는 홍주목 수령이 관아의 일을 보던 동헌과 휴식을 취하던 정자 여하정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옛 홍주아문이 지금도 군청의 정문 노릇을 하고 있다.

서산의 간월도는 서산방조제 공사로 연결된 섬 아닌 섬. 암자 한 채가 들어선 작은 섬이 소박하면서도 정겹다. 옛 성곽의 고즈넉함이 그대로 남은 해미읍성과 마음을 씻는 개심사, 백제의 미소로 유명한 서산마애삼존불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보령·홍성·서산=글·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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