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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안 움직이거나 일 저지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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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안 움직이거나 일 저지르거나

입력
2008.12.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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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무원들은 도대체 움직이지를 않는다. 복지부동(伏地不動)을 넘어 몸과 땅이 하나가 되는 신토불이(身土不二)로 납작 엎드려 눈치만 본다. 이런 행동을 언즉손(言卽損) 시즉손(視卽損) 동즉손(動卽損), 이른바 삼손주의(三損主義)라고 한 사람이 있다. 말하면 손해니 의견을 밝히지 않고, 보면 손해니 눈 감고, 움직이면 손해니 가만히 있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본전인데 왜 움직이겠는가. 이런 무사안일은 오래된 일이다.

최근 두드러지는 부동과 망동

반면 어떤 사람들은 움직이는 것은 좋은데 자꾸만 엉뚱하고 이상한 일을 저지른다. 부동과 망동(妄動)은 다 문제이지만 지금 이명박 정부에서는 움직여서 말썽과 논란을 빚는 문제점이 더 두드러져 보인다.

최근 말썽이 난 교육과학기술부의 현대사 교육보조자료 영상물 <기적의 역사> 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자료다. 4ㆍ19를 데모라고 하고, 5ㆍ18민주화운동과 6ㆍ10항쟁, 6ㆍ15 남북정상회담은 언급하지 않은 채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업적인 청계천 복원을 끼워 넣었다. 산업화와 경제발전만 강조하고 민주화의 역사를 외면했다.

종교 편향의 혐의를 받을 만도 한 <기적의 역사> 는 올해 ‘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년 중앙경축식’의 이 대통령 연설에서 비롯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60년을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라고 평가하고, 선진 일류국가 진입을 위해 새로운 60년에도 기적의 역사를 이어가자고 말했다.

그 말을 받아 영상물을 만든 교과부 교육과정기획과는 역사교과서 수정 작업의 주무 부서다. 궁금한 것은 대통령이나 장관이 그렇게 만들라고 지시했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해도 윗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공무원은 없을 것이다.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초등학생의 상식으로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른 것은 보편타당한 상식으로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집단사고의 맹점에 맞서 이의와 반대의견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국방부의 경우는 불온서적 23종을 선정하고, 이에 대해 헌법소원을 낸 군 법무관 7명을 처벌하려 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이 불온서적에 저서 2권이 포함된 노엄 촘스키의 비웃음까지 산 조치는 장관의 독특한 성격 탓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사전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게 문제다.

공무원들은 눈치에 밝다. 권력의 이동과 향배에 민감하다. 작년에 퇴임한 어느 기관장은 이임식을 마치고 귀가할 때 택시를 타고 가야 했다. 하도 불쾌해 그 날 받은 꽃다발을 돌려 보냈다는데, 택시를 부른 그 기관 사람들은 ‘너를 언제 다시 보랴’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관장은 그들의 예상과 달리 얼마 안 돼 장관으로 입각했으니 눈치가 틀린 셈이다.

신문기자로 일하다 기업체를 거쳐 공무원이 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신문기자 때 10을 일했다면 기업체에서는 그 반쯤 한 것 같고 공무원이 되니 반의 반 정도 일하는 것 같다.” 특히 공무원들은 신문기자가 한 나절이면 할 일을 1주일 동안 붙잡고 있더라는 것이다. 성격이 다른 업무를 극단적으로 비교한 사례이지만 본질은 공무원들의 나태다.

위부터 바꿔야 공직사회 변화

아주 오래 전 최규남 전 문교부장관을 인터뷰할 때 그가 한 말이 인상적이다. 공무원들에 대한 당부를 주문하자 그는 “장관은 흐르는 물과 같고 여러분은 강 바닥에 깔린 모래와 자갈입니다. 흐르는 물은 지나가지만 여러분은 그대로 있으니 자기 자리를 잘 지키며 열심히 일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공무원들이 눈치 보지 않고 녹(祿)에 걸맞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국민을 위해 올바르게 봉사하도록 하려면 위부터 달라져야 한다. 감사원이 적극적 행정행위에 대한 면책감사를 발표했지만, 그런 조치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청와대와 내각 개편론이 점점 커지는 것은 이유가 있다. 여러 부처에 걸쳐 올바르고 제대로 된 사람을 장관으로 기용해야 분위기가 겨우 달라질 수 있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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