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익숙할 때도 됐는데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 돌아올 때마다 눈물을 감출 수가 없네요." 남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위탁모 한국녀(64ㆍ여)씨는 11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홀트아동복지회 지하 강당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한씨는 입양 전문기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국내외 입양을 앞두고 있는 아동을 35년간 돌봐왔다.
지난 1973년, 당시 29살이던 한씨는 집안이 어려워 소액의 봉사료라도 받을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3시간에 한 번씩 일어나 분유를 먹이는 일이 고되기도 함직한데 한씨는 "이제는 아기들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했다. 한씨는 35년동안 배정받은 아기가 없었던 20여일을 빼고는 매일 같이 아기들을 키워왔다. 동네 사람들은 환갑도 훌쩍 넘은 한씨를 아직도 '아기엄마'라고 부른다. 남편과 2남2녀 자식들은 든든한 후원자다.
짧게는 두 달부터 길게는 2년까지 품에서 보살펴온 아기들은 142명. 제 자식 키우듯 정을 준 탓에 아이들을 떠나 보낼 때는 어김없이 가슴이 아려온다. 한씨는 "지난해 3월 11개월동안 키웠던 여아를 국내 입양 가정에 보내고 버스를 타고 오는데 버스 안에서 눈물이 계속 쏟아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엎드려 울었다"고 말했다.
한씨는 자신이 키웠던 아기들이 잘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 92년 홀트아동복지회에서 보내준 미국 연수에서 12년 전 키웠던 쌍둥이를 만난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한씨는 "세쌍둥이 중에서 두 명을 맡아 1년간 키우다가 미국으로 보냈는데 미국인 양부모 밑에서 세쌍둥이가 모두 잘 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벅찼다"고 말했다. 입양됐던 아이가 한국에 와 자신을 기억해주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고도 했다.
가장 힘든 시간은 아기가 아플 때다. 동네 병원이 문을 닫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에는 아픈 아이를 업고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종종걸음을 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경력이 쌓이다 보니 특별히 관심을 더 써야 하는 장애아나 미숙아 등도 한씨에게 주로 맡겨진다. 아기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냈던 아픔도 있었다. 한씨는 "심장과 폐가 좋지 않아 젖 한 번 빨면 한 번씩 호흡을 해야 하는 아기였는데 갑자기 호흡곤란이 와 서울대병원 중환자실로 급히 데려갔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반평생을 '아기엄마'로 살아온 한씨는 요즘 들어 관절염이 생겼고 내년이면 65세로 위탁모 정년을 맞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다. 그는 "지금도 5개월 된 미숙아를 키우고 있는데 이 아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좋은 가정에 갈 수 있도록 잘 돌보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이날 홀트아동복지회 강당에서 열린 '2008 장기근속 및 명예퇴임 위탁모 시상식'에서 35년 근속상을 받았다. 그는 65년 홀트아동복지회가 한국에 생겨 위탁모 사업을 시작한 이래 가장 오랜 기간 위탁모로 활동하고 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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