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폭(1%포인트)에 사상 최저수준(3.0%)까지 떨어진 기준금리는 한국은행이 시장의 상상을 뛰어넘는 '비장한 승부수'라 볼 수 있다. "(비상수단을 쓸 지, 말 지) 경계선에 와 있다"는 이성태 총재의 진단처럼 '더 이상 주저하다가는 큰 일 나겠다'는 위기감이 컸던 셈이다.
충격 인하 왜?
11일 금융통화위원회 직전까지 1%포인트 인하를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폭 인하를 바라던 채권시장마저 대부분 최대 0.5%포인트를 예상했고, 기껏해야 '설마'라는 단서와 함께 일부에서 0.75%포인트 정도를 점쳤을 정도다.
하지만 금통위원들의 공감대는 애초부터 '시장의 예상을 넘어서야 한다'는 쪽에 모아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인하 수준에 대한 공감대가 며칠 사이 크게 바뀌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상황이 당초 0.75%포인트 공감대를 1%포인트까지 올렸을 수는 있다. 한은이 당초 이번 주 초 발표 예정이었다가 금통위 이후로 연기한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이 그간의 예상보다 훨씬 안 좋게 나오자 금통위원들의 위기감이 더욱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도 이날 "국내 경제가 상당기간 아주 낮은 성장에 머물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한은이 '너무 소극적'이라는 그 동안의 정부 및 시장의 압력에 굴복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한은은 그동안 금리를 가파르게 내릴 경우에 거품 형성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조심스런 금리인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한은은 이날 금리 결정에서 큰 고려 사항인 불확실성이 적어져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불과 몇 달 전과 달리 상황이 워낙 바뀐데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두 급격한 하향이 확실해진 상황에서 "더 기다리거나 여러 번에 나눠 내리는 것이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이 총재)는 설명이다. 다만, 한은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가능성은 높다.
더 내리나? 예금ㆍ대출 금리는?
금통위는 이날 "향후 통화정책은 경기의 과도한 위축을 방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운용하겠다"고 밝혀 추가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 했다. 이 총재도 "(추가인하) 가능성은 열려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하하더라도 그 여력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다. 우리 경제여건을 종합적으로 볼 때, 미국처럼 0%대 금리는 사실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2%대 아래로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이에 대해 "금리가 너무 낮아서 금리 변동이 영향력을 상실하는 '유동성 함정' 수준 전까지는 가능하지만 지금의 3%가 유동성 함정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은 이날 예상을 넘은 기준금리 인하에 득실을 계산하느라 당장 예금ㆍ대출 금리를 변경하지 못했다. 실제 인하는 다음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은 이날 "정기예금 등 상품별로 최고 연 0.5∼1.0%포인트 범위에서 금리를 17일부터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
유동성 함정이란 금리가 내려갈 데까지 내려갔다는 판단에 따라 오히려 금리상승 기대심리가 발동해 소비 대신 저축만 늘어나는, 그래서 금리인하가 더 이상 소비ㆍ투자확대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지칭한다. 1930년대 대공황, 90년대 일본 장기불황때 이런 모습이 나타났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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