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로 2008년이 꼭 20일 남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각종 시상식에서 올해의 스타가 탄생하는 때이기도 하다. 이런 상은 남의 세상 이야기라고, 마이너스 통장과 응답 없는 취업원서를 바라보며 자학할 필요는 없다.
나에겐 나만의 상이 있다. 못 이룬 일, 후회스러운 일도 있겠지만 나에게만은 의미 있고 뿌듯했던 일도 있다. 나 스스로에게 이런 상을 주면 어떨지.
■ 가족화합상 = 홍성국(17·안동 경안고3)
10일 수능 성적표를 받았다. 기계공학과를 가고 싶은데 점수는 '아쉬운' 수준이다. 하지만 올해 집안은 아주 화목해져서 나에게 가족화합상을 주련다.
가족 분위기가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은 지난 5월 간암과 당뇨합병증으로 투병하는 아버지를 위해 간을 절반쯤 떼어 이식하는 수술을 한 이후다. 아버지는 죽음의 문턱에서 생명을 건졌고 수술 반 년이 지난 지금 일을 다시 시작할 정도로 건강해지셨다. 나는 간 이식을 위해 줄였던 몸무게가 다시 늘어 요즘 살을 빼고 있다.
수술 후 엄하셨던 아버지는 자상해지셨고, 중3 올라가는 여동생은 오빠를 존경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우하하. 내 덕분에 집안이 이렇듯 화목해지지 않았나.
■ 잘 버텼다상 = 심재명(44·MK픽처스 대표)
올해 초 올림픽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이야기를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에 404만 관객이 들었다. 총제작비 54억원을 들인 영화로는 대단한 흥행 성공을 거둔 셈이다.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등 상복도 이어졌다.
그만하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것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우생순' 이후 개봉한 '걸스카우트'와 '소년은 울지 않는다'는 연달아 흥행에서 죽을 쒔다. 제작자로 일한 지 벌써 10여년이지만 영화계 중견으로서 올해 내세울 만한 성과를 올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작자로 살아 남았다는 사실만은 스스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모두들 "죽겠다"고 아우성이었던 한 해였다. 그리고 참 잘 버틴 한 해였다. 내년에도 한번 더 버텨 보자는 생각에 '잘 버텼다'상을 나에게 수여한다.
■ 지독감량상 = 박신영(33·통역사)
결혼 전 44 사이즈를 자랑하던 나.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뒤 회사 다니랴, 아이 보랴, 집안일 하랴, 바삐 지내다 포동포동한 아줌마가 돼 버렸다. 여기저기 몸에도 무리가 왔다.
그러다 올해 여름 세 살짜리 딸이 작은 입으로 오물오물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모습을 오래 보려면 오래 살아야겠구나."
다음날 지독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대학 때부터 매년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고 번번이 실패했지만 이번엔 달랐다. 오후 4시 30분 김밥 한 줄로 저녁을 때우고, 퇴근과 동시에 헬스클럽으로 달려가 3시간씩 운동을 했다. 저녁 약속은 피했고, 꼭 가야 하면 밥을 먹었다고 둘러댔다. 처음에는 허기가 져서 누우면 별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점차 몸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6개월 만에 10㎏ 감량. U라인이었던 얼굴형은 뾰족한 V라인으로 바뀌었고, 청바지 안으로 셔츠를 넣어서 입을 수도 있게 됐다.
친구들은 "독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하지만 그들의 부러운 시선을 나는 알 수 있다.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독하게 살을 뺀 나에게 '지독감량상'을 수여한다.
■ 뒷바라지상 = 이옥숙(43·경남 통영시·주부)
큰 딸이 KAIST 합격 통지를 받은 날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다. 고등학교 들어가 10㎏이 넘게 빠진 딸을 보고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그동안의 고생을 모두 잊고도 남을 만했다.
사실 대도시도 아닌 지방에서 아이를 좋은 이공계 대학에 보내기는 너무 힘들었다. 방학이면 상경해 대치동 전문 학원에서 올림피아드대회 수상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보았다. 그런 학원을 못 보내고 수상 경력이 없으니 애가 탔다. 수시 정원의 대부분을 수도권 과학고 아이들이 차지했다. 아이도 나도 스트레스가 심했다.
대신 꼼꼼히 과학 기사를 스크랩하고 좋은 과학 도서나 잡지를 찾아 아이에게 전해주었다. 부지런히 정보를 모으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지금은 주변에서 축하의 말을 많이 듣는다. 입시 결과와는 상관없이 모든 수험생 학부모에게 훌륭한 뒷바라지상을 주고 싶다.
■ 용감무쌍독립상 = 유지영(25·인천나누리병원 원무과)
서울에서 인천으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병원 직원들과 함께 집을 구했다. 한 번도 부모님 슬하를 벗어난 적이 없다가 부푼 꿈을 안고 독립한 것이다. 어머니의 반대가 심했지만 굽히지 않았다.
식구들을 신경쓸 필요 없는 자유 시간이 많아지니 너무 좋았다. 좋아하던 일본 드라마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일어 공부 겸 혼자의 시간을 즐겼다.
그런데 서서히 청소며 빨래며, 날짜 맞춰 공과금을 내는 일까지 신경 쓸 일이 너무나 많은 것을 알았다. 이사하고 마련?밥통은 이제 쳐다보지도 않는다. 더구나 나보다 어린, 함께 사는 동료들이 귀가가 늦기라도 하면 은근히 내가 부모가 된 듯 신경이 쓰인다. 얼마 전 심하게 몸살이 났을 땐 밥도 약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 서럽기까지 했다.
나에게 주는 독립상은 사실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뜻한다. 부모님, 앞으로 더 잘 할게요!
김희원 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 작심삼일·용두사미·어영부영 2008… "새해 되풀이 NO"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2008년을 보람찬 해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슴을 치며 돌아보는 이들도 많다.
뜻대로 이루지 못한 소소한 개인사부터 온탕에서 냉탕으로 급속하게 변한 경제 상황으로 인한 예기치 못한 투자 실패까지 곳곳에서 후회와 탄식이 들린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무자년 한 해, 우리 이웃들은 무엇을 반성하며 연말을 보내고 있을까.
■ 쪽박 차게 생겼어요
주식은 반토막, 환율은 IMF 외환 위기 수준으로 급등한 한 해였다.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로 해외 펀드마저 무너지면서 개미 투자가들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최근 주가와 환율 회복 조짐에 "바닥을 찍었다"느니 "폭락 전 반짝 반등"이라느니 갑론을박이 오가는 사이 개미들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공기업 직원인 김모(34)씨는 올해를 되돌아 볼 때마다 끔찍할 뿐이다. 김씨는 올해 초 "펀드로 원금의 120%를 벌었다" "주식으로 1억원을 벌었다"는 사무실 동료들의 말에 좀더 일찍 투자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 하며 돈 불리기에 나섰다.
처음엔 500만원으로 조심스레 시작했지만, 나중엔 전세금을 빼고 승용차를 처분하는 등 제 살 깎아 먹기로 1억원을 투자했다. 지금 김씨가 받아 든 성적표는 수익률 마이너스 80%. 가장 많은 돈을 부었던 종목은 상장 폐지까지 됐다. 혼자만의 피해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친오빠와 남자 친구도 내가 추천한 종목에 투자했다 억대의 피해를 봤어요. 둘 다 '네 탓이 아니다'며 다독이지만 차마 얼굴을 못 들겠어요."
■ 또 흐지부지
연초에 꼭 해내리라 마음 먹은 일, 과연 얼마나 지켰을까. 작심삼일이란 말처럼 다짐하고 후회하고, 또 다짐하는 게 일상인 듯하다.
방송사 드라마PD 최모(30)씨는 올해 골프를 배우려고 마음 먹었다. 직업 자체가 사람을 만나는 게 일인 데다 30대부터 시작하면 허리 라인이 잡힌다는 말에 회사 앞 피트니스 클럽 골프연습장에 과감하게 등록했다.
장갑, 신발 등 필요한 용품도 갖추고 3개월 코스를 끊었지만 이틀 강습을 끝으로 게으름을 피웠다. 한 달 후 피트니스 클럽에서 돌아온 한 통의 문자. "그동안 성원해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리며 다음에 더 좋은 기회에 찾아 뵙겠습니다." 망했단다.
"차라리 등록을 연기하거나 환불을 받았어야 했는데…. 돈도 날리고 골프 연습은 2번 밖에 못했고 골프용품에는 먼지만 쌓였네요. 일에만 너무 몰두한 탓인지 만사 어영부영, 이 게으름을 어찌할까요."
■ 당장 입에 맞는 떡만
가야 할 길이 있지만, 힘들고 어렵다는 이유로 지레 포기하거나 외면하게 되는 것이 평범한 이의 삶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긋난 인생 행로를 후회하고 바로잡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 또한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중소 제조업체 직원인 신모(32)씨는 올해만큼은 꿈을 좇아 패션업계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또 주저앉아 버렸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는 높고 보수 수준은 낮은 업계의 현실을 생각하니 암담해진 것. 원서를 내고 면접까지 보게 됐지만 결국 포기했다.
"패션업계의 근무 환경이 좋지 않은데 신생 업체면 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월급도 지금보다 많이 깎일 텐데…. 사회 생활 6년 동안 소심증만 가중됐나 봐요."
대학생 이모(24)씨는 소심한 성격 탓에 기회를 놓친 자신이 밉다. 올 초 뉴욕으로 어학 연수를 떠날 때만 해도 영어를 네이티브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하지만 막상 외국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자꾸 주눅이 들고, 자신감은 점점 떨어졌다.
어느새 공부는 뒷전이고 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생활이 이어졌다. 다함께 소주를 마시고 노래방을 가면 한국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한국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스러워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데…. 이제는 무슨 일에 맞닥뜨려도 피하지 않고 맞설 거예요."
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 마무리·새출발 잘하는 법4
몸과 마음이 모두 바빠지는 세밑. 망년회와 각종 행사 등 들뜬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차분히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자는 다짐은 어느새 공염불이 되기 일쑤다. 한국리더십센터의 도움을 받아, 한 해의 끝자락을 알차게 보낼 수 있는 요령을 4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 10대 뉴스 선정
언론사에서 연말 선정하는 10대 뉴스처럼 개인이나 조직도 올해 있었던 10가지 큰 뉴스를 돌아볼 것을 권한다. 뉴스를 꼽다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무슨 일을 했으며,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정리가 될 것이다. 이같은 반성은 새해 계획을 세우는 데 밑거름이 된다.
● 큰돌 먼저 넣기
큰 돌, 작은 돌, 모래가 있을 때 모래와 작은 돌을 먼저 넣고 큰 돌을 넣으?넘치지만, 큰 돌부터 넣고 그 사이에 작은 돌과 모래를 넣으면 넘치지 않게 꽉 채울 수 있다. 연말의 시간관리도 이와 마찬가지다. 가정에서, 회사에서, 친목 공동체에서 자신이 할 일을 목록으로 정리한 뒤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부터 우선 순위를 정해 시간을 배분한다.
● 발상의 전환
망년회를 피할 수 없다면, 술 마시고 살아온 얘기를 하는 대신 시간이 없어 평소 하지 못했던 일을 하는 자리로 바꾸어 보면 어떨까? 가령 망년회를 등산 같은 신체 단련, 전시회 가기 등의 문화 활동과 연결시켜 본다면 부담도 적고 보람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평소에 시간이 없어서 못했던 일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하지 못했다.
● 망년회? 신년회!
평소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연말을 명분으로 만나 회포를 푸는 자리가 망년회라면, 굳이 망년회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술과 함께 한 해를 잊어 버리자는 식으로 진행되는 망년회는 또 하나의 술자리에 불과하다. 망년회를 위해 쏟는 시간과 공을 신년회를 기획하는 데 들이는 편이 더 건설적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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