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라는 마흔일곱 살 흑인 남자가 미합중국의 제44대 대통령으로 뽑혔다는 사실을 두고 웬 호들갑이냐며 짐짓 냉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그는 오바마의 '흑인 정체성'을 확신하지 않는 사람일 테다. 그 의심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오바마는, 외모가 흑인이긴 하지만, 백인 어머니 밑에서 자란 혼혈인이다. 그러니까 그는 백악관 주인으로 뽑힌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니라, 핏줄의 반쪽이 유럽계(흔히 코카시안이라 부르는)인 미국인이다. 그의 몸 속에는 자신의 모계 조상들인 영국인, 아일랜드인, 독일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
노예 후손 아닌 흑인 대통령
더구나 오바마는 노예의 후손이 아니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에서 하와이로 유학 온 인텔리였다. 다시 말해 오바마에게는 대다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집단적으로 추체험하고 있는 '노예의 기억'이 없다. 그것은 마틴 루터 킹이 1963년의 저 유명한 워싱턴 평화행진 연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에서 발설한, "언젠가 조지아의 붉은 언덕에서 그 옛날 노예의 자식들과 그 옛날 노예주인의 자식들이 형제애 가득한 테이블에 함께 앉을 수 있으리라는" 꿈을 오바마 자신이 직접 이룰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오바마는 미국의 평균적 흑인들과는 크게 다른 교육 배경을 지녔다. 그는 컬럼비아 대학을 졸업했고, 하버드 법학대학원생 시절엔 권위 있는 <하버드법률평론> 지(誌)의 편집장을 했으며, 시카고 법학대학원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자기 못지않게 지적인 흑인 여성과 결혼했다. 오바마의 영어 억양은 그처럼 미끈한 교육을 받지 못한 그의 동족 대부분과 크게 다르다. 하버드법률평론>
오바마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거의가 백인인 참모들에게 둘러싸여서 거의가 백인인 장관들과 함께 행정을 펼치게 될 것이다. 공익 변호 활동을 비롯해, 그가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 전 참여한 시민운동은 그에게 윤리적 아우라를 입혔지만,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흔히 '말벌'(와스프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이라 불리는 미국 주류세력의 이해관계에 떠밀려 그것이 빛 바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오바마는 또 그 말벌들 사이에서 미국의 경제와 문화를 움켜쥐고 있는 시오니스트들의 얼굴마담이 돼,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신성동맹에 시멘트를 한 겹 더 바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오바마의 당선이 확정된 순간 소주 잔을 들고 태평양 너머로 곡진한 축하의 마음을 건넸다. 어쩌면 그 때 내 눈에 이슬이 비쳤는지도 모르겠다. 설령 오바마가, 노무현이 그랬듯 대통령이 된 것 이상의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의 당선은 단기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조금은 덜 어둡게 만들 것이다. 오바마의 당선은 앞으로 4년 간 이 행성에, 적어도 지난 8년 간보다 포연이 덜 휘날릴 가능성을 높여주었다.
피부빛깔의 경계가 계급의 경계와 얼추 일치하는 미국에서 오바마가 제 인종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배신한다 하더라도, 그의 당선에 뜻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종적 유대감은 흔히 계급적 유대감을 넘어서고, 사람들의 삶은 빵 못지않게 중요한 자긍심이라는 먹거리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힘센 나라에서 '후세인'이라는 미들 네임을 지닌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은,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들 전체에 자긍심을 줄 것이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박수를
더러 흑인을 대통령으로 등장시키는 미국 드라마들을 보며, 나는 그 비현실성에 비위가 상하곤 했다. 내 생애 안에 흑인 미국 대통령이 나오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오바마가 힐러리 클린턴과 각축을 벌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지금 내가 형편없는 정치 관측자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다. 미국 유권자들은, 특히 적잖은 백인 유권자들은, 네 해 전의 불명예를 씻어냈다. 그것도 축하할 일이다.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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