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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광화문 복원용 소나무, 삼척 준경묘역서 첫 벌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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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광화문 복원용 소나무, 삼척 준경묘역서 첫 벌채

입력
2008.12.1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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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명이요!"

목수가 고함치며 도끼를 휘둘렀다. 휙, 공기를 매섭게 가르는 도끼의 날을 밑둥 깊이 받아들인 소나무는 울음을 참았다. 외강내유(外剛內柔). 110년의 세월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곧게 자랐지만, 단단한 그 속은 송진을 담뿍 머금고 있어 도끼의 타격을 조용히 삼켰다.

궁궐 건축의 전통을 재연하는 세 차례 도끼질이 끝난 뒤 언덕배기 숲은 잠시 전기톱 소리로 요란했다. 우지끈, 지름 74㎝, 키 25m의 늠름한 금강송은 그루터기만 남기고 비탈에 쓰러졌다.

하지만 영면이 아니다. 내년 초 헬기에 실려 산을 내려와 경복궁 내 목재 창고에서 다듬어진 뒤, 되살아나는 숭례문 혹은 잃어버린 옛 자리를 되찾는 광화문의 몸이 될 것이다. 나무는 죽음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10일 강원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의 황장산(1,059m) 자락, 준경묘 묘역에서 숭례문과 광화문 부재(部材)로 쓰일 소나무가 벌채됐다.

2010년 본격적인 재건 공사에 돌입하는 숭례문의 목재를 구하는 첫 작업이자, 같은 해 공사를 마칠 광화문의 마무리 부재 확보 작업이다. 준경묘 소나무는 연말까지 총 20그루가 벌채돼 숭례문과 광화문 공사에 각각 10그루씩 공급된다.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 장군이 묻힌 준경묘 일대 120만 평은 국내 최대 소나무 군락지로 꼽힌다. 목질에 있어서도 으뜸이다. 고종 11년(1874)부터 왜란 때 불탄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1961년 숭례문을 대대적으로 중수할 때 이곳 금강송들이 투입됐다.

가까이는 2001년 산림청에서 충북 보은 정이품송의 혈통 보존을 위해 이곳 소나무와 혼례를 시켰다. 태조 5년(1396) 숭례문을 처음 지을 때도 준경묘 소나무가 쓰였다는 설이 있다.

베어진 소나무의 밑둥을 살피는 광화문 도편수(총 책임 목수) 신응수 대목장의 표정은 흐뭇했다. "만져봐요, 끈적끈적하죠? 송진이 풍부해서 그런 겁니다. 이런 나무는 강도만큼이나 유연성도 뛰어나서 하중과 충격에 강하죠. 비를 맞아도 썩지 않는 점도 좋고요." 신 대목장은 이런 재목이면 기둥이나 창방(지붕을 받치는 부재) 등 건물 틀을 이루는 핵심 부재로 쓰일 것이라고 했다.

나무가 150년은 됐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한 목수는 110개쯤 되는 나이테를 세더니 머쓱해 했다. "지난해 강릉에서 광화문에 쓸 소나무 벨 때는 이만한 나무들이 모두 백오십 살을 넘었거든요. 대관령에서 벴던 250년 묵은 나무도 크기가 이만했는데…."

신 대목장이 "워낙 생장 환경이 좋아서 그렇다"고 대꾸했다. 좋은 소나무를 찾으러 전국 방방곡곡을 뒤지고 있지만 준경묘를 능가하는 곳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한다.

신 대목장과 함께 온 30여 명의 광화문 목수들은 나무를 베기 전 산신(山神)에게 벌채 사실을 고하는 산신제를 올렸다. 현재 유구(遺構ㆍ건물 옛 모습의 자취)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인 숭례문은 아직 목수팀이 꾸려지지 않았다.

웃는 상의 돼지가 올려진 제사상에 문화재청과 삼척시 공무원, 목수들이 절을 올리고 돼지 앞발에 돈 봉투를 끼웠다. 활기리 주민, 전국에서 온 준경묘 봉향회원 150여 명이 함께 마음을 모았다.

산신제 전엔 준경묘 제각(祭閣)에서 전주이씨 문중 사람들이 모여 고유제(告由祭)를 치렀다. 문중 원로 30여 명이 헌관(獻官ㆍ제사 주관자) 복식을 갖추고 조상께 나라의 귀중한 건축물에 쓰일 나무를 베겠다고 알리는 축문(祝文)을 읽고 허리를 굽혔다.

이날 벌목 행사는 산자락을 따뜻하게 덥히는 초겨울 햇볕 아래서 마치 축제처럼 치러졌다. 그러나 도끼질을 하기까지, 산통이 제법 대단했다. 이곳 소나무를 베어 광화문에 쓰려는 문화재청의 계획에 대해 전주이씨 종중 및 봉향회는 조상 묘역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줄기차게 반대해왔다.

2006년에 이어 올해 초에도 문화재청과 삼척시에 '벌목 계획을 철회하라'는 탄원서를 냈다. 활기리 주민들도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준경묘에 손대는 일을 마뜩잖게 여겼다. 사실 준경묘 일대는 문화재청 소유의 국유림이지만, 이 같은 반대에 부딪친 문화재청 입장에선 마냥 계획을 밀고 나갈 수 없었다.

강경하던 종중 측 입장이 누그러진 계기는 지난 2월 일어난 숭례문 화재. 준경묘 봉향회장 이승복(69)씨는 "온 국민을 분노하고 애통하게 만든 사건인 만큼, 숭례문 복원에 나무를 내어달라는 문화재청의 요구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에서도 벌채목을 20그루로 제한하고, 준경묘의 국가 사적(史蹟) 격상을 적극 검토하는 것으로 화답했다. 문화재청 하선웅 사무관은 "조선왕조 중시조(中始祖)의 묘역에서 얻은 나무로 조선 정궁(正宮)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과 사대문의 정문인 숭례문을 복원함으로써 역사적 정통성도 함께 얻었다"고 평했다.

이번 준경묘 벌채로 숭례문 복원은 자재난에서 완전히 탈출했다. 문화재청 최병선 과장은 "숭례문 복원에 드는 소나무는 50주가량으로 예상된다"며 "전국 각지 국유림에서 충분한 재목을 확보한 데다가 소나무 기증을 약속한 분들도 12명이나 돼서 2010년 착공에 문제가 없겠다"고 말했다.

삼척=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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