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경제위기로 빈곤층 급증이 불가피해졌다"며 감세와 사회간접자본(SOC) 지출을 우선시하는 현 정부에 사회안전망의 보완을 정면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경제침체에 따른 빈곤화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11일 열리는 '경제위기에 대비한 사회정책 핵심과제' 토론회를 준비한 보사연의 한 관계자는 "경제위기에 따른 빈곤층 급증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준비도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토론자로 참석하는 김교성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역시 "내년 감세 규모 10조원이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일자리 창출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며 "정부는 사회안전망 확충에 돈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실제 엉뚱한 곳에 돈을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토론자인 홍경준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정부가 경제위기에 따른 빈곤층 급증에 대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0년간 사회안전망 확충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 재현시 20%의 빈곤층과 17%의 복지 사각지대가 예상되는 것은 현재 복지정책이 제한된 극빈곤층에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침체가 닥치면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등과 같은 저소득층이 연쇄적으로 빈곤층으로 전락하게 되지만, 현행 제도로는 이들을 보호할 장치가 별로 없는 실정이다.
보사연에 따르면 국내 전체 가구(기초수급가구 제외)를 소득 순으로 세웠을 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를 제외하고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10%(1분위)의 경우 경제위기가 닥치면 이중 60.3%가 기초생활보장이나 고용보험 등의 적용을 받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2분위는 87.2%, 3분위 77.4%, 4분위 73.0%가 사회안전망 적용을 받지 못할 것으로 나타났다. 보사연 이현주 연구위원은 "소득 2~3분위의 고용보험 가입 비중이 지나치게 낮고, 기초보장 역시 극빈곤층에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며 "사회안전망의 이 같은 현실이 경제위기로 인한 빈곤층 증가와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빈곤층 전락 위험이 높은데도 현재 사회보장 체계 밖에 있는 저소득층에 대한 집중적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고용보험 등 비정규직의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이고, 학습지 판매원 등 일부 일용직 직업군은 상시직으로 전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교성 교수도 "빈곤층 급증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며 "그런데 정부 정책은 오히려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또 안정적이면서 최저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만드는 '적극적 노동시장 프로그램'에 대한 재정 투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홍경준 교수는 "산업정책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정부는 오히려 이러한 예산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토론자인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고용보험 대상이 아닌 자영업자 비중이 워낙 높을 뿐 아니라,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재산 기준까지 엄격히 따지기 때문에 보편적 안전망이 될 수 없다"며 "재산이나 부양의무 등과 상관없이 생존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체계가 별도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률 기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