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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월훈(月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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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월훈(月暈)

입력
2008.12.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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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첩첩 山中(산중)에도 없는 마을이 여긴 있습니다. 잎 진 사잇길 저 모래뚝, 그 너머 江(강)기슭에서도 보이진 않습니다. 허방다리 들어내면 보이는 마을.

갱 속 같은 마을. 꼴깍, 해가, 노루꼬리 해가 지면 집집마다 봉당에 불을 켜지요. 콩깍지, 콩깍지처럼 후미진 외딴집, 외딴집에도 불빛은 앉아 이슥토록 창문은 木瓜(목과) 빛입니다.

기인 밤입니다. 외딴집 老人(노인)은 홀로 잠이 깨어 출출한 나머지 무를 깎기도 하고 고구마를 깎다, 문득 바람도 없는데 시나브로 풀려 풀려 내리는 짚단, 짚오라기의 설레임을 듣습니다. 귀를 모으고 듣지요. 후루룩 후루룩 처마깃에 나래 묻는 이름 모를 새, 새들의 溫氣(온기)를 생각합니다. 숨을 죽이고 생각하지요.

참 오래오래, 老人(노인)의 자리맡에 밭은 기침 소리도 없을 양이면 벽 속에서 겨울 귀뚜라미는 울지요. 떼를 지어 웁니다, 벽이 무너지라고 웁니다.

어느덧 밖에는 눈발이라도 치는지, 펄펄 함박눈이라도 흩날리는지, 창호지 문살에 돋는 月暈(월훈).

첩첩 산중에도 없는 마을은 지문처럼 찍어놓은 마음의 등고선을 따라가야만 나오는 마을이다. 마음이 산과 계곡을 이룬 령에 침 넘어가듯 꼴깍, 해가 지면 그 해를 받아 집집이 불을 켜는 마을. 이슥토록 켜진 모과빛 등불도 따듯하고, 처마깃을 파고든 새들의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노인의 마음도 따듯하다. 새들이 놀래 달아나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귀를 모으는 노인처럼 나직나직 함박눈이 내리고 달그림자가 진다. 여기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의 고독은 찾아가야 할 아늑한 어떤 풍경으로 바뀐다. 참된 고독은 짚오라기 같이 보잘 것 없는 것을 통해서도 나를 둘러싼 세계와 설레이며 교감할 줄 아는 것. 그런데, 동거해온 귀뚜라미만 유난스레 울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벽이 무너져라 떼를 지어 통곡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아무래도 마음의 지도를 밝혀주던 불이 한 등 까무룩 꺼져버렸나 보다. 아는지 모르는지 기침 소리도 나지 않는 지붕 위로 무심한 함박눈만 쌓인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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