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메아리] 버냉키와 이성태

입력
2008.12.10 00:06
0 0

“우리는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붕괴에 직면해 있는데, 버냉키 선생은 운전대를 잡고 졸고 있다.”

미국 경제ㆍ정책 연구센터의 딘 베이커는 지난 2월 정치 웹사이트 ‘진리(Truthout)’에서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택시장 버블이 터져 신용경색이 심화하는데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CNBC 짐 크레이머 기자는 한 술 더 떠 “버냉키는 학자입니다. 바깥 실정이 얼마나 안 좋은지 전혀 모릅니다. 그는 바보입니다”라고 조롱했다.

운전대 잡고 졸다 달라진 버냉키

버냉키는 취임 초 선제적인 통화정책으로 절대권력을 누렸던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으로부터 저금리 기조에 따른 인플레이션 문제와 주택시장 버블로 인한 자본시장 위기를 모두 물려받았다. 그가 모순되는 두 현상에 대한 처방 사이에서 결단을 주저하는 학구파적 태도를 보이자 매파(금리 인상 주장)와 비둘기파(금리 인하 주장) 양쪽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신용경색을 풀기 위한 통화정책 완화, 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유동성 확대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긴축,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긴축이 모두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서로 다른 네 가지 방향에서 버냉키를 잡아당긴 셈이다. 그는 네 방향으로부터 경제흐름에서 뒤처져 있다는 혹평을 받았다. (에단 해리스의 <벤 버냉키의 미 연방은행> 참조)

하지만 버냉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 대출) 부실 사태로 경제위기가 확산되자 대공황 전문가답게 좌초 위기의 미국경제를 안전하게 인도하는 예인선 선장 역할에 힘쓰고 있다.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고,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을 끌고 다니면서 1차 7,000억 달러, 2차 8,000억 달러의 구제금융 보따리를 풀었다. 최근엔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제로수준까지 낮출 것을 시사했다. 초기에 운전대를 잡고 졸았다지만, 재빨리 정신을 차려 운전대를 고쳐 잡고 폴슨보다 앞서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안주한 채 위기 극복을 위한 예인선 선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유동성 공급, 은행 자본확충 지원, 금리 인하가 뒷북 대응인 데다, 미지근한 반쪽 대책에 그쳐 신용경색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부처는 이 총재가 고립 속의 유아독존에 빠져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한은이 귀를 막은 채 성직자적 행보를 보인다면 물가 안정에 목숨을 걸도록 한 한국은행법 제1조를 개정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은 미 FRB나 일본은행처럼 완전고용(성장)과 금융시장 안정을 한은 설립 목적에 추가하자는 한은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총재 경질론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일부 언론의 이총재 흔들기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전광우 금융위원장이 연이은 헛발질과 자살 골로 위기를 확대시키고, 곳간을 축낸 것에 비해 이 총재는 그나마 일관된 통화정책으로 선방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최-강 라인(강만수 장관-최중경 차관)이 물가를 희생해서라도 성장을 위한 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한 데 대해 의연히 맞선 것은 평가 받아야 한다. 한은이 기준 금리를 더 내릴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한 것은 이 총재가 소신을 지켰기에 가능했다.

이 총재도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하지만 한은은 은행의 은행, 최종 대부자로서 급한 불부터 끄기 위해 다른 소방관들과 협조해야 한다. 카인의 후예처럼 떼와 오기로 맞서 경제팀과 샅바싸움을 벌이다가는 마을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다. 소신과 고집불통의 상반된 평가를 받는 이 총재는 헨리 폴슨과의 긴밀한 공조로 위기대응책을 내놓고 있는 버냉키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본받았으면 한다. 서민의 권익을 지키는 호민관이 되겠다는 이 총재가 선제적이고 충분한 통화정책을 통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갔으면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