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장기침체에 대비하는 기업 구조조정의 방향과 추진체계를 놓고 우왕좌왕하던 정부가 어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공개했다. 건설사 지원을 위한 대주단협의회,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을 통한 중소기업 옥석 가리기 등 산발적으로 내놓은 정책의 추진주체와 지향점이 불분명해 경제의 불확실성만 키운다는 비판을 의식해서다. 정부는 누차 외환위기 때와 사정이 다르다며 민간 자율의 구조조정을 강조했지만 이는 곧 원칙의 부재와 혼선, 금융권과 기업의 도덕적 해이 조장을 낳아 우리 경제의 병인을 키워온 게 사실이다.
정부는 우선 과거와 같은 일괄 구조조정 대신 개별 기업 및 그룹별, 또는 산업별로 대응키로 하고 채권금융기관이 협의회를 구성, 거래기업의 경영상태를 정상(A) 일시적 유동성 부족(B) 부실징후(C) 부실(D)의 4개 등급으로 분류토록 했다. 이후 B, C 등급 기업에 대해선 협의회가 자금 지원과 워크아웃 등 회생방안을 결정하고 D 등급은 퇴출된다. 특히 B 등급의 대기업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의해 구성돼 있는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의 조정을 받아 원활하고 신속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앞서 정부는 신용경색에 시달리는 은행권에 대해 내년 1월 말까지 현재 평균 8.2%인 기본 자기자본 비율을 9% 이상으로 높이라고 요구했다. 은행권의 자산 건전성을 높여 기업 구조조정의 강도와 속도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민간 자율의 구조조정을 압박ㆍ감독하려고 만든 기업 재무구조개선지원단의 단장을 금융감독원장이 맡도록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늦게나마 흐트러진 체계와 운영방식을 정비한 것은 좋지만 이 정도로 시스템이 정상 작동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기업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신속히 정리하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실효성을 상실한 4개 등급 분류 카드를 재탕한 것부터 어설프기 짝이 없다. 기업 구조조정의 전제인 은행권 자본확충 방안도 여의치 않다. 그나마 정책의 취지를 보여주려면 하루 속히 본보기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부-은행-기업의 3자간 책임 전가 속에 도덕적 해이의 내성만 커지고 경제는 더욱 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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