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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중소 철강 유통사 연쇄 도산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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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차례는…" 중소 철강 유통사 연쇄 도산 공포

입력
2008.12.09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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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생지옥 입니다. 요새 무슨 정신으로 사는지 아세요? 술을 안 마시면 버틸 수가 없다니까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애들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중소 철강 유통상가가 몰려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철근과 강관 등을 취급하는 H철강 K사장에게 최근 경기 상황을 묻자, 이렇게 절규에 가까운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언제 물건을 내다 팔았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 하다"면서 윗옷 안주머니에서 피우다 남은 담배를 꺼내 물고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서서히 올 것이 오고 있는 게 보입니다. (부도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수 밖에요."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실물경제가 붕괴되면서 중소 철강 유통업체들이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다.

수요 산업인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경영 환경이 열악한 중소 철강 유통업체들이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연쇄 도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새 매출 규모가 적게는 30억원에서 많게는 800억원 대에 이르는 중소 철강 유통업체들이 잇따라 부도 처리되고 있다.

이달 초 형강과 철근, 후판 등을 취급하는 대부철강은 9억원 상당의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1990년 7월 설립된 대부철강은 현대제철의 형강 지정 판매점으로, 지난해 683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지난달 말에는 부산의 중견 강관 유통업체 대황철강(2007년 매출 213억원)이 7억원 규모의 어음을 못 막아 부도가 났으며, 경남 함양에 본사를 둔 철구조물 전문 유통업체 ㈜세영(2007년 매출 226억원)도 지난달 11일 만기 도래한 어음 17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를 맞았다. 앞서 수도권을 포함한 중부지역에 주로 물량을 공급하면서 지난해 804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철구조물 유통업체 한신스틸콘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가장 큰 원인은 자금 회전이 안되기 때문. 원청 업체에서 받은 물건을 가공해 만든 철강 제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내수 침체 탓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아 창고에 쌓아둔 철강 제품들이 자금줄을 죄는 악성재고로 변한 실정이다. 경기 남양주에서 10년 가까이 철판과 철근 등을 유통하고 있는 드림철강의 지희현(43) 사장은 "건설은 물론 전반적으로 내수경기 회복에 대한 신뢰감이 떨어지다 보니, 고객들이 좀체 구매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가격을 아무리 후려쳐서 싸게 내놓아도 지금은 아예 물건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연말에 어음 만기가 돌아오는 업체들이 많은데다 수요가 적은 겨울철 비수기에 접어들고 있어, 자금 사정이 열악한 중소 업체들의 줄부도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업계에선 이미 '다음은 누구 차례'라는 루머성 살생부(?)까지 공공연하게 나돌며 소비 심리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산업연구원 김주한 박사는 "수 년간 건실하게 유지돼온 철강 유통업계가 일시적인 자금 압박으로 무너진다면, 경기가 회복됐을 때 정상적인 유통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대기업과 은행권, 관계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자금 지원을 포함한 전방위적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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