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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37> 만화가 고우영·신동우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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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연예기자 1호 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 <37> 만화가 고우영·신동우의 인생

입력
2008.12.09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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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고우영과 신동우. 이 두 명의 거물 만화가들에 관한 이야기를 따로 쓰지 않고 함께 묶기로 했다. 이유는, 그들의 삶이 마치 만화처럼 거의 비슷하거니와 동시대에 살며 만화사에 길이 남을 작품들을 많이 남긴 점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두 만화가의 이름을 소개할 때 누구 이름을 먼저 쓰느냐 하는 것으로 고민은 시작된다. 신동우, 고우영? 고우영, 신동우? 나이로 보면 신동우(1936년생)씨가 고우영(1938년생)씨 보다 두 살 더 많다. 그러나 만화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은 고우영이 1년 빠르다. 고민 하다가'가나다'순으로 하기로 했다.

나는 이 두 사람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다. 만화 그리는 사람들의 생활특성상 대체로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서로 우연히 만나게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내가 만든 자리에는 꼭 참석하여 함께 어울리곤 했다. 두 사람은 닮은 점도 많고, 반대로 대조되는 점도 많았다. 특히 둘 다 10대의 젊은 나이에 만화가로 데뷔를 했다는 것이 같고 하늘을 찌르는 인기에도 불구하고 굵고 짧게 살다 간 점도 닮았다. 이들의 개성과 닮은 점 등을 짚어 보고자 한다.

<고우영> 은 만주에서 태어났지만 평안도에서도 살았다고 한다. 압록강이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평안도 사투리를 약간씩 썼다. 어릴 적에 꿩을 잡아서 냉면을 해 먹던 일, 돼지고기를 곳간에 걸어 놓았다가 칼로 도려내서 부침개 해 먹던 이야기 등을 나한테 여러 번 했다. 그는 부침개라고 하지 않고 꼭 '지짐이'라고 말했다. 어찌나 설명이 리얼한지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침이 저절로 고였다.

<신동우> 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났다. 두만강이 가까운 곳이다. 그래서 지독한 함경도 사투리를 썼다. 재미있다면서 나한테 함경도 사투리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가자미, 명태 등으로 만든 '식해'와 큼직한 순대 이야기를 시작하면 술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이 모두 미식가이고, 술독이었다. 술자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인데 두 사람이 다 노래를 잘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노래만큼은 신동우가 더 잘 했다고 봐야 한다. 특히 그는 꼭 기타를 가지고 다녔으며 연주 실력이 대단했다. 그와 내가 함께 노래를 불러서 레코드 취입을 해보자는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 그 제의를 한 사람은 신동우의 고등학교 동창으로 방송국 PD를 하다가 지금은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신동우의 친형이자 역시 만화가인 신동헌 선생이 클래식 평론을 하고 음악 해설집을 발간할 정도였으니 음악 재능도 집안 내력인 모양이다.

고우영은 각종 스포츠를 즐겼다. 내가 암벽 빙벽 전문 산악회인 '악우회' 회장으로 있을 때 삼각산(북한산) 인수봉 암장에서 고우영씨를 만나서 서로 얼굴 보며 "후와후와" 거리며 웃던 생각이 난다. "만화 안 그리고 바위엔 왜 왔어요?"하고 내가 공격하자, 그는"그러는 정형은 기사는 안 쓰고 바위에 왜 매달려 있는 거요?"하고 응수하며 배낭에서 위스키 병을 꺼냈다. 그는 사냥, 낚시 등을 좋아했고 스쿠버다이빙을 즐겼으며 한때 권투를 하기도 했다. 여행을 아주 좋아 했는데 내가 미국에 있을 때 LA에서 그를 만났고 그 이야기는 그가 쓴 미국 여행기 앞머리에 실리기도 했다.

고우영은 14살 어린 나이에 추동성이라는 필명으로 만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처음 그린 만화가'쥐돌이'인데 이는 단행본이었다. 60년대에는 '짱구박사'라는 어린이 상대 만화를 그려 최고의 인기를 얻었고, 70년대 들어서서는 한국일보 자매지 일간스포츠에'임꺽정'을 매일 연재하면서 극화라는 장르를 개척하게 된다. 그 후로'수호지''일지매''서유기' '삼국지''초한지'등등 고전을 재해석하는 만화로 인기 몰이를 한다. 특히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 익살스러운 대사 등을 등장 시켜서 유행어를 만들기까지 했다. 그가 만든 대사들은 지금도 가끔 TV에서 듣게 된다.

신동우도 17살 고등학생 시절에 '땃돌이의 모험'이라는 만화를 그려 데뷔를 한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작품은 역시'홍길동'이다. 그도 '수호지''삼국지'등 고전을 현대적으로 그렸고, 특히 만화로 '한국의 역사'를 그렸다. 동글동글한 그림 모양이 매우 정겹게 느껴져서 가정적 터치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신동우는 그림을 무척 빨리 그리기 때문에 TV에 출연하여 대담을 하면서 그림 하나를 뚝딱 그려내곤 했다. 그림으로 내는 퀴즈 프로그램에도 많이 출연을 하는 등 연예인 기질이 많았다. 항상 싱글벙글 하고 다녀서 걱정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고우영이 '임꺽정'이란 작품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여러 차례 성격을 바꿔 가며 그렸을 때, 신동우는 '홍길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친형 신동헌 화백이 감독한 만화영화 '풍운아 홍길동'을 비롯해서 후속 작품인 '호피와 차돌바위', 그리?'돌아온 영웅 홍길동' 등 홍길동 시리즈가 그것들이다.

1982년, 내가 미국에서 서울로 왔을 때 친한 친구와 선후배들이 환영을 해준다고 한국일보 근처에 있는 경양식 카페 2층에서 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배우들, 가수들도 있었는데 신동우와 고우영, 두 사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에 말 수가 적은 고우영이 갑자기 사회를 보기 시작하고, 신동우는 특유의 기타 솜씨로 좌중을 휘어잡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최희준, 위키리, 박형준, 유주용 등 가수들이 노래를 안 부를 수가 없게 되었다.

이 모임의 백미는 역시 두 만화가의 봉사였다. 임시 화판을 차려 놓고 그날 온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마구 그려 주기 시작한 것이다. 모임 분위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는 그들에게 정말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유명을 달리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신동우씨는 1994년에 58세로, 그리고 고우영씨는 2005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짧지만 굵은 삶을 살다간 보고 싶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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