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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나는 돌아가 악동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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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나는 돌아가 악동처럼

입력
2008.12.09 05:08
0 0

문태준

멀리 가서 멀리 오는

눈을 맞는다

만 섬 그득히 그득히

무 밑동처럼 하얀 눈이네

밟으면

무를 한입 크게 물은 듯

맵고 시원한

소리가 나네

나는 돌아가 惡童(악동)처럼

둘둘 말아 사람을 세워놓고

나를 세워놓고

엉덩이 살을 베어

얼굴에

두 볼에 붙이고

모자를 얹어

나는 살쪄 웃는다

내가 눈 속으로 아주 다 들어갈 때까지

눈을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난다. 발밑에서 터지는 소리에 취해 눈길을 걷길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이 악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시인은 그 소리를 무를 베어물 때의 '맵고 시원한' 맛과 같다고 했다. 밭에서 막 뽑아올린 무에 묻은 흙을 쓱쓱 소매로 대충 닦은 뒤 크게 벌린 입으로 아사삭 베어물 때의 그 싱싱한 소리.

속이 다 알싸해오는 그 소리에 취해 눈길을 걷다보면 어린 날 학교 운동장에 세워둔 눈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때 나는 눈사람은 왜 항상 뚱뚱해야 하는지, 입속에 맛난 무엇인가를 혼자 감추고 있는 욕심쟁이처럼 미어터지는 볼과 코끼리 엉덩이처럼 둥글둥글한 배로 비만체질이어야 하는지 매사에 의심이 많은 악동이었다.

간밤 내린 눈을 누가 다 치우나 했더니 아파트 현관 앞에 그 사이 생긴 눈사람이 여럿이다. 눈사람을 만드는 건 즐거운 놀이이면서 동시에 눈을 치우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제 겨우 안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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