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연말 대규모 감원 공포가 몰아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람을 자르는 구조조정을 모범 사례로 지칭하면서, '공공 개혁'은 곧 '인력 감축'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탓이다.
공공 개혁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지만, 초유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과연 사람만 자르는 것이 능사인지 비판이 상당하다. 공공 부문의 고용 불안이 민간 부문에까지 상당한 부정적 파급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 이어 8일에도 인력 15% 감축을 단행한 한국농촌공사를 공기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로 극찬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농촌공사 100주년 축하 메시지를 통해 "최근 공사 노사가 합심해 내놓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 방안은 어렵고 힘든 시기에 공공기관으로서 모범을 보여줬다"고 언급했다.
발언의 파장은 공공 부문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국내 최대규모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정원 2만1,700명 중 10%인 2,000여명을 3년에 걸쳐 줄이는 조직개편안을 마련했고, 한국도로공사나 철도시설공단 등도 인력을 10% 이상 줄이는 방안을 내놓은 상태다.
정부 부처들은 공공기관들을 향해 더욱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구조조정 성과 등을 토대로 공공기관장에 대해 연내 중간 평가를 실시하기로 했고, 지식경제부는 최근 산하 69개 공공기관에 추가적인 경영 효율화 방안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단순히 인력 감축 뿐 아니라 조직 슬림화 등 다양한 경영 효율화 방안을 추진하자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인력 감축을 얼마나 하는 지가 핵심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다른 경영 효율화 방안은 구색 갖추기에 불과할 뿐, 공공 개혁이 인력 감축 수치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공공 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사람 자르기 중심의 개혁 방안은 상당한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인력이나 예산 등의 규모에 대한 인위적 구조조정 뿐 아니라 산업 구조에 대한 개혁이 병행돼야 한다"며 "공공 개혁에 대한 청사진이 부족하다 보니 인력 감축에만 매달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지금 같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공공 부문이 고용 안정을 선도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많다. 내년에 공공 부문에서 16만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던 정부가 오히려 공공 부문 일자리 감축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경제를 살리고 공공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공공 개혁이지, 단순히 사람과 인건비를 줄이고 예산을 축소하는 것은 아니다"며 "공공 개혁을 명분으로 인력 구조조정만 단행한다면 민간 부문에 잘못된 시그널을 줌으로써 사회 전반에 경제 불안, 고용 불안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문향란 기자 iami@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