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가요계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불황 중 다행'이다. 다른 문화 분야에 비해 훨씬 일찍 바닥을 경험했기 때문에 체감 불황지수가 낮은 이유도 크겠지만 일단 음반 판매량을 놓고 봤을 때도 크게 나쁘지 않다.
동방신기가 신보 '미로틱'을 46만장(소속사 발표)이나 팔아 서태지 7집의 기록(48만장)에 4년 만에 근접했고, 1990년대로 치면 100만장의 가치가 있다는 10만장 판매 음반이 다섯 손가락을 넘어섰다.
또한 과거의 스타들이 줄줄이 돌아오면서 20대 초반과 10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대중음악 시장이 예전보다 풍성해졌다. 여러 인디밴드들의 급성장도 시장에 활기를 더해줬다.
그렇게 힘들지만 은근한 끈기를 보여준 2008년 가요계를 단지 음반판매량만으로 결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서 본보는 대중음악 전문가 10명이 선정한 '베스트 5 음반'을 기준으로 순위를 재구성해봤다.
가장 많은 전문가들에 의해 '베스트 5 음반'에 선정된 앨범을 골라 순위를 매기고, 여기에 베스트 음반들의 대중성과 작품성 점수(5점 만점)의 합산치를 순위이 재구성에 적용했다.
전문가 10 명 중 5명의 선택을 받은 언니네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가 1위에 올랐다. 대중성과 작품성 합산 점수 39점으로, '가장 보통의 존재'는 역시 5명이 베스트 리스트에 올린 백현진 1집 '반성의 시간'(합산 점수 35.5점)을 앞섰다.
한국 모던록의 출발선을 그은 3인조 그룹 언니네이발관의 이 음반은 10개의 앨범 수록곡들이 마치 한 권의 수필집을 읽듯 서사적으로 이어져 독특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의 경계를 적절히 오가면서 감수성을 자극하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2위에 선정된 '반성의 시간'의 백현진은 1990년대 한국 대중음악에서 가장 전위적 음악을 한 밴드로 평가받는 '어어부 프로젝트'의 보컬 출신이다. 영화와 음악, 그리고 미술에서 전방위적인 예술활동을 하는 백현진에 의외로 많은 표가 몰렸다. 이기훈씨는 그의 음반에 대해 "한국의 인디 무대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보여준 태도와 실력"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 3명의 베스트 음반 리스트에 오른 봄여름가을겨울의 8집, 에픽하이의 5집이 각각 3, 4위다. 밴드 결성 20년을 넘긴 봄여름가을겨울의 8집은 사랑을 주제로 12명을 인터뷰한 후 이를 소재로 만든 앨범으로 특히 중년 남성의 감성에 호소했다. 강태규씨는 "숙성된 음악을 마시는 듯한 느낌, 안주가 더 이상 필요없다"고 표현했다.
5위에 오른 김동률의 '모놀로그'는 10만장이 넘게 팔려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음반이다. 김동률은 에픽하이와 함께 판매량 순위에서도 10위 안에 들었다.
아쉽게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인디의 서태지'로 불리는 장기하와 얼굴들이 대중성과 작품성 점수 합산 15점으로 8위에 오르는 등 특히 실력있는 인디밴드들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 설문에 참여한 분들ㆍ가나다 순
강태규(음악평론가ㆍ뮤직팜 이사) 김경진(로엔엔터테인먼트 팀장) 김세광(CBS 공연기획단장ㆍ프로듀서) 송기철(음악평론가ㆍ케이비트 대표) 서성덕(웹진 보다 필진) 서정민갑(음악평론가) 이건웅(퍼플레코드 사장) 이기훈(음악평론가) 임진모(음악평론가ㆍ상상마당 홍보디렉터) 차우진(음악평론가)
■ '오빠'들의 컴백/ 서태지·김동률 등 90년대 감성 음악 올 한해 관통
2008년 음악계를 관통한 정서는 1990년대의 감성이었다. 극심한 불황 속에서 음악 소비자들은 사상 최고의 가요 번성기였던 90년대의 분위기를 그리워했다.
아무리 불법 카세트테이프들이 만든 '길보드 차트'가 90년대 가요계 호황의 많은 부분을 담당했다 하더라도, 김건모의 '핑계'와 룰라의 '날개 잃은 천사'의 판매고가 200만장을 초과 달성한 기록은 음악팬들의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올해 대중적으로 혹은 상업적으로 성공한 가수들의 리스트에는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날의 '오빠'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며 이름을 올린다.
'난 알아요'로 1992년 발라드와 비(非)발라드로 단순 구분되는 가요의 경계를 허물었던 서태지는 16년이 지난 2008년에도 14만여장(8집 프로젝트 첫번째 앨범)이 넘는 판매 파워를 보여줬다.
그가 은퇴를 선언했던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의 공백으로 현재의 20대 초반 연령층에 어필하지 못한 약점이 있지만 그의 전성기를 그리워하는 30대 중반까지의 마니아들이 꾸준히 음반을 구입해준 덕이다.
1993년 MBC대학가요제로 데뷔했던 김동률이 올해 두각을 나타낸 것도 각별하다. 그의 5집 '모놀로그'는 10만장의 판매량을 훌쩍 뛰어넘은 것은 물론 얼어붙은 공연시장에도 불구하고 콘서트 연속 매진의 성과를 올렸다.
1인 프로젝트 밴드 토이의 6집으로 돌아왔던 유희열은 90년대 음악팬들의 공통분모인 라디오음악 정서에 제대로 어필해 8만여장을 팔았다. 그의 소품집인 '여름날'도 토이 6집에 이어 1만장의 한정판매분이 조기에 매진됐다.
하반기에 음반을 낸 김건모와 신승훈은 비록 판매량에 있어선 3만여장에 그치는 부진한 성적이었지만 평단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음악평론가들은 모던록 스타일이 정착된 신승훈의 앨범에 대해 "굳어진 자신의 음악적 이미지를 씻은 적절한 시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5일 프로젝트 앨범 '송북'을 낸 윤상의 국내 음악계 복귀 소식은 2009년에도 오빠들의 트렌드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한다. 그는 내년 초 정규앨범도 낼 계획이어서 90년대 음악팬들의 가슴은 더 설렌다.
양홍주 기자 yanghong@hk.co.kr
강명석 객원기자 lennone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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