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가와 곤(市川崑). 올해 2월 13일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일본 감독이다. 한때 세계적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어깨를 겨누기도 했고, '러브레터'의 이와이 순지(岩井俊二) 감독이 '이치가와 곤 이야기'라는 다큐멘터리를 헌정할 정도로 젊은 일본 영화인의 귀감이 되었던 유명 감독이지만 그의 마지막 길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대중의 귀에 설은 그의 이름을 운명을 달리하고 한참 지나 뒤늦게나마 불러낸 이유는 그와 관련한 영화가 잇달아 국내에 소개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코미디 '매직 아워'에서 이치가와는 카메오로 얼굴을 비쳤고, 18일 개봉하는 옴니버스 영화 '열흘 밤의 꿈'에선 메가폰을 쥐었다. 한일관계의 특수성 때문에 오랜 세월 그의 영화세계와 조우할 수 없었던 국내 시네필들에게 작은 위안이 될 듯하다.
특히 두 작품을 통해 그의 만년의 왕성한 활약상을 지켜볼 수 있는 점은 큰 기쁨이다. 구순을 넘긴 나이가 무색했던 그의 모습에서 삶의 비의를 엿보는 즐거움은 만만치 않다.
애니메이션 기획자로 영화에 입문한 이치가와는 감독이 된 뒤 블랙 코미디의 명수로 일컬어졌다. 그러나 정작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반전영화 '버마의 하프'(1956)와 다큐멘터리 '도쿄 올림픽'(1965)이었다. 반세기 전 이미 명장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그의 전진은 멈추지 않았다. 환갑에 스릴러 '이누가미 가족'(1976)으로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고, 동명 영화를 30년이 지나 91세 때 직접 리메이크하는 정열을 발산하기도 했다.
'매직 아워'는 태양이 지기 시작해 어둠이 내리는 짧은 순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루 중 하늘이 가장 아름다워 영화를 촬영하기에 가장 좋은 때로 여겨지는 시점이다. 삶의 황혼기를 강렬하고 아름다운 빛으로 장식한 이치가와의 생애와 절묘하게 포개지는 단어다.
연말이다. 지나간 한 해에 대한 회한이 밀려오고 모든 걸 잊고 싶어질 만한 시점이다. 하지만 12월이 바로 한 해의 매직 아워가 아닐까. 당신은 올해의 매직 아워를, 혹은 인생의 매직 아워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wenders@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