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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학전 '그림자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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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희의 막전막후] 학전 '그림자 소동'

입력
2008.12.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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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통해 제작진의 꿈을 엿보는 것은 때론 안타깝다. 불가능한 지점을 향해 몸을 낙하하는 저 용감한 꿈의 번지점프. 잡아주는 것은 연극 동료들의 몇 손길뿐, 객석은 비고 제작비를 건지기는커녕 다음 작업을 기약할 길 없다.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극장, 빈 무대 그 허공 중에 온 몸으로 하나씩 획을 만들며 나아가야 한다.

사교육에 어린이들을 빼앗긴 현실 속에서, 생각하는 놀이터여야 할 극장은 비어만 가는데 어린이 관객을 향한 끈질긴 구애 하나가 눈에 띈다.

'학전 어린이 무대 시리즈'가 벌써 네번째 막을 올렸다. 경제 불황, 계약직 증가 등 불안정한 수입으로 가족 단위의 관객들이 손잡고 극장을 찾던 호시절도 막 내린 지금, 당장의 교육적 효과를 내세운 상업적 대형 제작물을 제외하고는 참다운 어린이 연극이 희귀한 현실 속에서 학전은 어떤 힘으로 어린이 연극 현장을 소걸음 하듯 우직하게 걸어가고 있는가.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슈퍼맨처럼' 등 독일 원작의 한국적 각색에 이어 우리 창작동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자 소동'(김민기 작ㆍ연출)으로 다시 어린이 관객을 찾아 나섰다.

'그림자 소동'은 학전의 어린이 연극다운 활력을 잃지 않되 어른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저항의 시대, 독재정치의 검열 속에서 은유와 서정을 담은 노래를 들려준 음유시인 김민기씨는 이 연극에서 오늘날 다시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응시하고 나지막이 노래를 들려준다.

연극은 먼 대륙의 선주민들이 그러했듯 내 영혼이 내 걸음을 못 따라올까 봐 잠시 앉아 기다리는 그 마음을 초심으로 삼는다.

경쟁사회의 극한에 이른 대한민국의 오늘, 미친 속도에 질린 우리의 그림자들은 지쳐 주인들에게서 떨어져나간다. 하루 3시간 이상을 잘 수 없는 점수경쟁에 몰린 10살짜리 주인공 '박사'와 가족들의 고단하고 각박한 일상 속에 끼어든 그림자 분실 사건을 통해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감상과 서정을 꾹꾹 누른 듯한 절제되고 담백한 가사와 음률은 관객을 성찰로 이끈다.

예서 잠시 어린이들이 극 내용을 다 소화할까 반문하기를 멈추자. 그림자 분신들이 벌이는 극중 소동에 홀리든, 빔 프로젝트로 투사되는 영상과 배우의 실연이 접촉하는 낯선 무대기법을 즐기든, 아이들은 아이대로 보고 느낄 게 많다.

작위적인 호흡과 혀 짧은 재래의 어린이극 말법을 버리고, 담담하면서 차근차근히 어린이 되기를 열심히 연구하는 배우들도 소중하다. 블랙라이트, 야광 페인팅을 이용해 어린이들에게 밤의 세계, 그림자로 은유되는 죽음의 세계까지 경험하게 하는 또 다른 웅숭깊은 의도는 덤이다. 7일까지 학전블루 소극장.

극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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