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힐먼 지음ㆍ주민아 옮김/도솔 발행ㆍ352쪽ㆍ1만4,500원
미국의 패튼 장군은 전쟁에 미친 사람이었다. 영화 <패튼 대전차 군단> 에서 그는 전장의 아수라장을 보며 부관에게 되뇐다. "난 전쟁을 사랑하네. 무슨 조화인지 몰라도 나는 전쟁을 진짜 사랑해. 내 목숨보다도 말일세." 기고만장하던 그는 그러나 나치의 패색이 짙어갈 무렵이 되자 우울해진다. 적이 사라졌다. 전쟁이라는 생물체의 존립 근거가 소멸한 것이다. 엄청난 허탈감을 패튼은 러시아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적을 찾아냄으로써 메웠다. 전쟁의 목표는 오로지 전쟁 자체를 지속시키는 데 있기 때문이었다. 패튼>
미국의 원로 심리학자로 1950년대 수단 대학살 등 전쟁의 현장에 있기도 했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분석하면서 전쟁을 심리학적 견지에서 풀어보인다. 그는 '전쟁은 인간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전쟁은 혐오와 매력을 동시에 발산하는 기괴한 생명체다.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의 원제는 'A Terrible Love of War'. 인간의 전쟁을 향한 미친 사랑의 실체를 캐기 위해 저자는 '원형 심리학'의 분석 도구를 이용한다. 무역 전쟁, 성 전쟁, 인터넷 전쟁, 정보 전쟁 등의 존재는 전쟁이 일상화됐음을 뜻한다. 전쟁이 공포영화의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듯 우리의 삶은 전쟁이 일상화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저자는 본다. 전쟁에>
인간에게 전쟁은 필연이다. 인간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도 이미 전쟁을 잘 알고 있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므로, 그것은 본능이다. 가정불화, 자살, 침묵, 절망의 행위 등 미국의 퇴역 군인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전쟁의 상태란 인간에게 원형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의 전쟁 신화는 현대에까지 언어, 상상력의 소재 등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저자는 전쟁에서 일어나기 마련인 성폭력에 대해 "성에 관련되는 일이라기보다 근본적인 죄를 상징하는 만행"이라며 그것이야말로 "전쟁이 지닌 욕망의 은밀한 근원"을 드러내보이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60일간의 전투를 겪고 나면 생존 군인의 98%는 정신과 환자가 될 것"이라고 2차 세계대전에 관한 한 연구는 지적하기도 했다.
전쟁이 야기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는 인간의 상상력의 실패에서 기인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이라크전은 미국을 수렁에 빠뜨렸다.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트는 "우리는 이제야 이런 대재앙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지 알 수 있다"며 "그것은 본질적으로 결과를 상상하지 못 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융 심리학의 제자답게 저자는 신화적 사실들이 후대의 전쟁들과 어떻게 긴밀하게 연결돼 있나를 방대한 자료에서 추출해 보인다. 전쟁에 대해 씌어진 여타 서적들에 비겼을 때, 이 책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그 같은 접근 방식 때문이다. 저자가 실제 전투에 참여했던 경험 등을 녹여내면서 보여주는 풍성한 문학적 소양은 이 책이 여타 전쟁 관련서와 결정적으로 차별되는 대목이다. 책이 기본적으로는 전쟁에 대한 인문주의자의 성찰로 읽히는 이유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역자가 붙여둔 주석이 큰 도움이 된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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