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자동차 '빅3' CEO들에게는 참담한 하루였다. 정부 구제금융을 얻기 위해 4일 열린 상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참석한 GM의 릭 왜고너, 포드의 앨런 멀랠리, 크라이슬러의 로버트 나델리 CEO는 청문회가 진행된 6시간 내내 의원들로부터 온갖 질책과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2주전 청문회에 전세기를 타고 왔다가 "돈을 구걸하는 사람이 호화 전세기를 띄웠다"는 호된 비판을 받았던 CEO들은 이날은 자동차편으로 디트로이트에서 수백㎞를 달려왔다. 하루 전에는 고용을 축소하고 공장을 폐쇄하는 등의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제스처'도 소용없었다. 청문회가 시작되기 무섭게 빅3의 무책임과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사방에서 쉼 없이 쏟아졌다.
공화당의 밥 코커 의원은 "외국 경쟁업체에 수년간 끌려 다닌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세금을 들일만한 가치가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크라이슬러의 대주주조차 회사에 자기 돈을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데 왜 납세자의 돈을 쏟아 부어야 하느냐"고 따졌다. 리처드 셸비 의원은 CEO들이 자동차를 타고 온 것은 "쇼"라며 "당신들이 직접 운전을 했느냐, 아니면 운전사를 데리고 왔느냐"고 조롱에 가까운 비난을 퍼부었다. 그는 그러면서 "돌아갈 때도 차로 갈 것이냐"고 물었다. 민주당 크리스토퍼 도드 위원장은 이 말을 받아 "어디에서 묵고 있나, 무엇을 먹고 있는가"라고 거들었다.
빅3에 대한 비판은 어법에 다소 차이가 있었으나 민주당이나 공화당, 친 노조 성향이나 자유시장을 주창하는 의원들 모두 한결같았다. 몇 달째 논란이 계속되는 자동차산업에 대한 구제금융 자체를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피로증후군'도 의원들 얼굴에 역력했다. 노조 기반이 강한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밥 케이시 민주당 의원이나 찰스 슈머(뉴욕) 의원이 노조의 양보를 평가하며 구제금융을 엄격히 감시할 신탁기구를 신설하자고 한 발언이 그나마 호의적이었다.
CEO들은 한껏 자세를 낮췄다. 왜고너 GM 회장은 "우리가 실수했다, 그 실수에서 배우고자 한다"고 사과한 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여기 온 것은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며 의회의 결단을 촉구했다. 뮬럴리 포드 회장은 "회사가 파산한다면 판매에 직격탄을 맞고 그러면 신속한 구조조정은 더 어려워진다"고 호소했다.
도드 위원장은 빅3가 요청한 380억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 지원은 "터무니 없는 요구"라며 의회가 나서지 못할 경우, 조지 W 부시 정부나 연방은행이 자동차 산업 구제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도드 위원장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바니 프랭크 하원 금융위원장,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대표 등은 청문회 뒤 부시 대통령에게 자동차 산업 긴급지원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가 구제금융을 통과시키지 못할 경우 정부가 직접 나서달라고 요구한 것이어서 이 문제를 놓고 부시 정부와 버락 오바마 차기정부의 갈등이 한층 증폭될 조짐이다. 백악관은 고효율 자동차 개발 명목으로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250억달러 지원금을 전용하라는 기존 입장을 밝히면서 7,000억달러 구제금융은 자동차가 아닌 금융분야로 용처가 한정돼 있음을 강조했다. 토니 프랭크 백악관 부대변인은 "의회가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구제금융은 실패한 자동차업체의 생명을 몇 개월 더 연장하는 의미밖에 없기 때문에 빅3 중 한두 업체는 파산하도록 해야 한다"는 기류가 강해 빅3의 생존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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