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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시인들 동시집 출간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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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시인들 동시집 출간 붐

입력
2008.12.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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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를 판다?/ 판다는 안 돼요/ 판다는 팔 수 없어요/ 판다는 물건이 아니거든요/ 판다 사진을 판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판다를 판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최승호 '판다'에서)

음운의 반복과 일상을 뒤집는 상상력을 활용해 말놀이(pun) 동시의 맛을 보여준 시인 최승호씨. 그의 <말놀이 동시집> 시리즈 3권은 첫 권이 발간된 2005년 이래 지금까지 10만부 가량이 판매됐다.

초판(3,000부)을 소화하는 일반 시집이 10~20%도 안되는 상황에서 첫 권만 4만부가 넘게 팔린 이 시리즈의 상업적 성공은 기성시인들이 동시라는 '신개지(新開地)'에 눈을 돌리게 된 계기로 꼽힌다.

기성시인들의 동시집 발간이 줄을 잇고 있다. 신현림, 최명란, 김기택, 이기철씨는 지난해 2월 비룡소에서 각각 의성어ㆍ의태어, 한자, 몸, 식물을 테마로 한 동시집 시리즈인 <초코파이 자전거> <하늘천 따지> <방귀> <나무는 즐거워> 를 선보였다. 신씨의 <초코파이 자전거> 는 1만5,000부, 최씨의 <하늘천 따지> 는 8,000부가 팔리는 등 독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첫 동시집 <나무잎사귀 뒤쪽마을> 을 발표한 안도현씨는 올해 아예 동시집 시리즈 기획자로 변신했다. 지난주 문학동네가 선보인 박성우씨의 <불량꽃게> , 이안씨의 <고양이와 통한 날> 등 동시집 시리즈는 이 기획의 첫 결과물. 앞으로 송찬호, 함민복, 문태준씨 등 스타급 시인들이 이 시리즈를 통해 동시집을 낼 예정이다. 신경림 시인도 지난 2월 발표한 시집 <낙타> 에 동시 7편을 실은 바 있다.

기성시인들의 동시 발표는 멀리는 윤동주로부터 박목월, 오규원 시인 등으로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최근의 현상은 최승호씨의 사례에서 보듯 출판사의 기획과 결합된 '기획동시집' 형태를 띤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 공과(功過) 논쟁도 벌어질 전망이다. 시인,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시적 완숙도가 높은 기성시인들의 동시집 간행은 침체된 한국동시의 발전에 자극을 줄 것"이라는 기대와 "기성시인의 이름에 기댄 상업적 기획의 남발로 상투적인 동심주의, 계몽주의적인 동시들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비판은 이미 시작됐다. 동시인 전병호씨와 시인 이안씨는 지난해 아동ㆍ청소년문학 전문잡지 '오늘의 동시문학'과 '창비 어린이'등을 통해 상업적 성공 여부와 별개로 일부 이름난 기성시인들의 동시집들이 동시만의 문학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전씨는 최근 기성시인들의 동시집이 요즘 어린이들의 정서나 감각과 괴리가 있는 동시를 낳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도시화가 80% 이상 진행됐는데 많은 시인들은 동시에서도 경계하는 어린시절, 농경사회 체험을 떨치지 못한 동시들을 내놓고 있다"며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쉬워 보이니까 동시를 쉽게 써도 된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했다.

동시인이자 아동문학 전문 출판사 푸른책들 대표인 신형건씨는 "유명 시인들의 동시는 아이들의 일상이 빠져있거나 시적 전달 측면에서 편차가 발생하는 등 그들이 기존 시단에서 보인 성취에는 못미친다"며 "시인들이 시 세계의 확장 차원이 아니라 유행 따라 동시집 출간에 뛰어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반면 기성시인들의 동시 발표가 우리 아동문학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30만부 이상 팔린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의 저자 김용택씨는 "어린이들에게 잘 읽혔던 방정환, 이원수, 이오덕의 동시 같은 작품이 나타나지 않는 한국 동시계에 최승호, 안도현, 도정환 등 역량있는 기성시인의 참가는 큰 자극이 될 것"이라며 "동시인의 작품이냐, 기성시인의 작품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이 읽고, 어린이들의 정서에 도움이 되는 작품을 내놓을 수 있는냐에 따라 최근의 동시집 출간 붐이 일시적 유행에 그칠지 아닐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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