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요즘 신문마다에는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한창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건설회사, 조선회사, 저축은행 등에 이르기까지 대상도 점점 더 확대되는 분위기인데요. 이를 독려하는 정부와 반발하는 기업들 간에 갈등도 적지 않습니다. 대체 구조조정이 뭐길래 이처럼 민감한 반응들을 보이는 걸까요. 닥터 이코노미에게 물어봅시다.
A.
먼저 기업 구조조정의 정의부터 알아볼까요? 넓은 의미의 기업 구조조정은 기업이 변화하는 시장상황에 맞춰 새 사업을 준비하거나 핵심 사업을 강화하는 등의 조직 개선을 뜻합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불경기에는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파산이나 도산 같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허약한 체질을 개선하는 뜻으로 보통 쓰이지요.
불경기를 맞으면 은행 같은 금융 회사들은 스스로의 자산을 지키기 위해 기업에 더 이상 돈을 빌려주지 않고, 빌려줬던 돈도 회수하려 합니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익이 적은 회사들은 재무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기업 구조조정은 이처럼 재무상태가 부실해진 기업이 생존을 위해 채권금융회사나 정부와 협의해 자산 매각, 대출금 상환 등을 통해 기업구조를 변경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합니다.
기업 구조조정에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요즘 신문에는 ‘워크아웃’(Workout), ‘프리워크아웃’(Pre-Workout), 법정관리 같은 말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모두 기업 구조조정 제도의 구체적인 형태들입니다. 기업 구조조정 제도는 채권금융회사와 기업이 사적인 협약을 통해서 하는 지, 아니면 법원의 중재를 통해서 하는 지에 따라 크게 ‘워크아웃 형태의 사적처리 제도’와 ‘법정관리 형태의 법적처리 제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사적처리 제도는 돈을 빌려준 은행과 돈을 빌린 기업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채무면제 등 기업개선계획안(또는 워크아웃 플랜ㆍ풀어 읽는 키워드 참조)이 포함된 자율약정을 체결하여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는 방법입니다. 사적처리 제도의 대표적인 형태가 워크아웃이며 이를 우리말로는 ‘금융기관 협약을 통한 기업 재무구조 개선 작업’ 정도로 풀어 쓸 수 있겠군요.
한편, 최근 언론에 등장한 ‘프리워크아웃’은 기존 워크아웃의 개념에다 ‘선제적’(부실 가능성이 있는 기업의 조기선정과 조기지원)이라는 개념을 추가한 것입니다. 회사가 영업활동을 통해 수익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인 자금 압박으로 부실화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신속하고 충분한 자금 지원을 통해 기업을 도와주는 제도입니다. 최근에 이익은 좋으면서도 키코 같은 환헤지상품 가입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등이 지원대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법적처리 제도는 채권금융회사와 기업이 입장차이로 자율적인 협약체결이 어려운 경우, 법원의 결정으로 구조조정을 진행시켜 나가는 방법입니다. 법에 의해 구조조정이 진행되며 법원의 관리를 받는 법정관리가 대표적인 형태입니다. 워크아웃에 비해 이해관계자간 다툼을 줄일 수는 있지만 절차가 복잡하고 빠른 지원이 어려운 단점이 있습니다.
구조조정은 무서운 것 아닌가요?
외환위기를 경험한 우리 국민들에게 기업 구조조정은 대체로 두려운 것으로 각인돼 있습니다. 10년 전 우리 경제가 처음으로 경험한 기업 구조조정이 워낙 대규모였던 데다 외환위기와 겹쳐 너무도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됐기 때문이죠.
당시 기업 구조조정은 곧 실직으로 여겨졌습니다. 통계청의 실업자 통계를 보면, 구조조정이 시작된 1997년에 실업자가 13만명, 이듬해인 1998년에 92만명이 각각 늘어났습니다. 2년 동안 무려 105만명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거죠. 이처럼 기업 구조조정은 주로 경제사정이 어려운 시기에 활발해져 실업 등의 경제적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업 구조조정은 순기능이 더 많습니다. 채권금융회사가 기업의 도덕적 해이 등을 견제할 수 있으며 산업 전반에 자금의 효율적 공급을 유도해 우량기업 육성을 촉진 하는 등의 장점이 있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의 장점은 뭔가요?
첫째, 기업의 체질이 좋아집니다. 기업에게는 적당한 긴장감을 주고 채권은행에게는 돈을 빌려준 기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게 해 견제와 보완을 통한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유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조직이 유연해지는 등 구조조정이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데요, 이로 인해 기업의 부채비율이 크게 낮아지는 등 재무구조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양호한 모습이라는군요.
둘째, 은행의 손실을 통제 가능한 범위로 묶을 수 있습니다. 기업 구조조정은 채무면제, 채무의 만기연장 등이 필연적이어서 채권금융회사는 어느 정도 손실이 불가피하죠. 미店낫?기업 구조조정이 일시에 진행된 외환위기 당시에는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손실 등으로 10여개가 넘는 은행이 도산한 경험이 있지만 이후에는 이로 인해 도산한 은행은 없습니다. 최근 건설업계의 구조조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금융기관의 손실도 일정 범위 안에서 통제하기 위해 채권금융회사들이 대주단(풀어 읽는 키워드 참조)을 결성한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셋째, 기업의 투명성이 높아집니다. 금융회사는 기업 구조조정 대상기업을 선정하기 위해 금융사가 부담할 손실규모, 기업의 이자지급 능력, 기업의 조기정상화 가능성 등 여러 측면에서 기업을 실사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기업의 투명성이 크게 높아집니다. 특히 공시의무가 없어 상대적으로 기업정보 획득이 어려웠던 비상장기업의 투명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습니다.
이런 효과는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금융감독원의 중소기업 워크아웃 추진실적에 따르면, 2004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워크아웃을 신청한 전체 부실 중소기업(5,630개사)의 54.4%에 해당하는 3,063개사의 경영이 정상화되었다고 하는군요. 정상화된 기업의 체질은 한층 건실해지고 채권은행은 손실을 크게 줄인 셈이죠.
기업 구조조정을 활성화하려면
위에서 살펴봤듯이 기업 구조조정 활성화는 순기능이 많습니다. 하지만 경영자가 사적 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해 구조조정에 미온적인 경우, 대상기업 선정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이해관계자의 신뢰가 부족한 경우에는 그 효과가 제한적일 것입니다.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업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선정기준과 지원책 등을 명확히 하고 외환위기 당시의 기업구조조정위원회와 같은 구심점이 될 만한 기구를 만드는 등 관련제도를 보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조조정에 대한 채권금융기관, 종업원, 경영자 간의 신뢰와 협조일 것입니다.
▦풀어 읽는 키워드
◆대주단(貸主團)이란
대주단 - 건설사 지원 위한 금융사 채권단
최근 건설업계를 지원하기 위해 은행, 보험, 증권, 자산운용, 저축은행 등 186개 금융회사가 결성한 채권단입니다. 건설사에 돈을 빌려준 개별 금융사 별로 대응하기 보다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 하에 설립됐답니다.
◆기업개선계획안(Workout Plan)이란
기업개선계획안 - 채권재조정 등 명시한 문서
채권금융회사들이 이행할 채권재조정 등의 사항, 대상기업의 자구계획ㆍ경영목표ㆍ기타 구조조정 약속, 불이행시 처리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문서입니다. 보통 ▦대상기업의 경영목표 ▦인력ㆍ조직의 구조조정 계획 ▦자산매각ㆍ감자 등 재무구조 개선 계획 ▦경영목표 미달시 추가 추진계획 ▦노동조합ㆍ주주 등의 동의서 등을 공통적으로 담습니다.
한국은행 조사국 강기우 조사역
■ 진행중인 구조조정 현황/ C&이 신호탄 건설사도급물살
최근 자금난에 빠진 C&그룹에 대한 채권단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채권 금융기관들은 조선업체인 C&중공업과 건설업체인 C&우방에 대해 '워크아웃'을 개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워크아웃(채권단 공동관리)은 대표적인 사적 구조조정 제도이며, 조선업과 건설업은 현재 구조조정이 가장 시급한 분야라는 점을 감안하면 C&그룹의 워크아웃 결정은 앞으로 이어질 본격적인 구조조정 러시의 신호탄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고 있어 워크아웃이 필요한 단계는 아니지만 현금흐름에 문제를 겪고 있는 기업을 대상으로 유동성을 지원하거나 자구노력을 촉구하는 이른바 '프리 워크아웃'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180여개 채권 금융기관들이 가입해 건설사들에게 1년 간 채무 만기를 연장해 주는 '건설사 대주단 협약'이 대표적입니다. 4월 시중은행들 주도로 처음 결성된 후 단 1개 건설사만 대주단 협약에 가입하는 등 실적이 저조했으나 지난달 건설사들의 유동성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인식 하에 정부가 동시 가입을 권유, 29개 기업이 한꺼번에 가입 신청을 했습니다. 현재 주채권 금융기관들이 24개 업체에 대해 가입을 승인했고 나머지 5개사에 대해서도 승인 심사를 진행 중입니다.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들을 A~D 등급으로 분류, 신속하게 유동성을 지원하는 '패스트 트랙' 프로그램도 프리 워크아웃에 해당합니다. 채권 금융기관들은 업체로부터 패스트 트랙 지원 신청을 받으면 경영 상태에 따라 A, B 등급 업체에는 신속한 지원을 하되 C, D 등급 업체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거나 퇴출시키게 됩니다.
5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주력업종 3단계 위기 대책'도 프리 워크아웃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부는 모두 10개 업종에 대해 녹색ㆍ황색ㆍ적색 등으로 구분하고 업종별 위기대응책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중 건설과 중소 조선, 해운업 등이 문제가 시급한 적색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정부는 중소 조선업체에 대해서는 자체 기술력을 확보하지 않고 벌크선 등 범용 기술에 머무르는 경쟁력이 낮은 업체는 퇴출을 유도할 방침입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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