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V를 보면 신체 건강한 젊은 남자가 어린 학생들의 폭력 현장을 보면서도 개입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는 광고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오는데 어쩌다 저런 광고까지 등장했을까 많은 생각을 해봤다. 최일선 치안행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광경이다.
얼마 전 강도나 소매치기 등 범법자를 잡거나 신고한 '용감한 시민'에게 수여한 보상금이 2007년 14억1,700여만원, 2008년 15억9,200여만원에 이른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한두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용감한 시민'이 되면 과연 범죄자들이 대낮에 소매치기, 날치기 등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치안의식 수준과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교육ㆍ근로ㆍ납세ㆍ국방 등 4대 의무가 있다. 4가지 의무 중 하나라도 없다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 뭔가 한가지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영국의 경우, 9세기께 알프레드 대왕이 모든 국민들에게 '치안의 의무'가 있음을 선포해 성인 남자는 누구라도 범인을 발견하면 같이 협력해 체포해야 할 의무가 있음이 당연시되고 있다. 이어 18세기에 18세 이상의 영국 남자는 치안판사 앞에서 '치안 선서'를 하는 제도를 만들어 누구라도 지역치안을 위해 범죄를 발견하면 즉시 행동을 개시할 의무를 가슴 속에 새기게 했다.
물론 과거 영국은 북쪽 바이킹족들에게 수시로 침탈을 당하고 왕권마저 좌지우지된 시대적 배경이 있어 시민의 치안의무가 생성됐다고 보여지나 치안 제일의 나라라는 명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똑같이 외부로부터 침탈을 당한 수치스러운 역사가 있는 한국에 '치안 의무'라는 단어가 왜 생소해야 하는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요즘 같은 세태에 신세대 경찰에게 온 몸을 던져 충성을 다 할 것을 요구하기는 실로 쉽지 않다. 국민들이 범죄를 목격하면서 신고조차 생각하지 않는다면 경찰력은 한계를 보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해마다 줄어들지 않는 범죄와 수단의 지능화, 흉포화 등에 대비하기 위해선 국민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치열한 치안 의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헌법을 개정해 '치안 의무'를 신설할 것을 제안하는 이유다. 그것이 당장 어려우면 아이들이 18세 성인이 되는 날 '치안 선서'를 하게 해 범죄 및 범죄자와 싸워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 줘야 할 것이다.
한기만 전주완산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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