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는 칠레나 싱가포르와의 FTA처럼 단순한 경제협정이 아니다. 실무회의를 몇 차례 열고 계량모형을 돌려 편익을 추정한 후 협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추진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FTA와 한미동맹이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정부가 철저한 경제논리에 의거하여 한미 FTA를 추진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미 FTA의 협상과정을 이해할 수 있고 향후 정책대안도 옳게 파악할 수 있다.
'동맹 연계'로 협상력 저하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통일외교안보 부문의 국정과제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시대'를 제시했다. 한미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도 적극적인 대북정책과 지역외교를 통해 동북아에 유럽과 같은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구축한다는 것이 노무현 정부의 기본 입장이었다. 이에 따라 당시 이미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한일 FTA를 비롯하여 동북아, 더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방안이 모색되었다.
2003년 8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확정된 'FTA 추진 로드맵'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기타 지역과의 FTA도 추진하기로 결정되었지만, 실무회의만 몇 차례 열렸을 뿐 한미 FTA는 2005년 하반기까지 별 동력을 얻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던 한미 FTA가 2005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유는 무엇인가? 실무회의나 계량모형 분석에서 무슨 대단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국제관계의 변화에 대처하는 수단으로 한미 FTA를 활용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2004년에 벌어진 고구려 역사논쟁은 한국이 중국의 '화평굴기'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이어 2005년에 독도를 두고 일어난 한일 간의 갈등은 일본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문제를 제기했다.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 발언은 이처럼 주변국과의 마찰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한국이 미국과 동맹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는 '반미' 발언으로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이 더 이상 약소국이 아니라 동북아 국제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주권국가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노 대통령은 중국 및 일본과의 마찰을 겪으며 한미 동맹관계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게 되고, 그 동안 대북정책 등과 관련된 미국과의 갈등을 만회하는 수단으로 한미 FTA를 적극 추진하게 된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2006년 여당 의원들에게 한미 동맹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한미 FTA를 추진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이처럼 동맹관계와 연계하여 한미 FTA가 추진되었기 때문에 우리 측의 협상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과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전문직 비자 쿼터와 반덤핑 및 상계관세 등에 관한 요구를 했지만 그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른바 '선결과제'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익균형' 찾는 대안 필요
한미 FTA 선(先)비준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겠다고 하지만, 한일 FTA처럼 이익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면 협상 결렬도 불사한다는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지금도 밀릴 수밖에 없는 구도이다. 재협상은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불가하다고 하지만, 이미 일부 여당 의원도 지적한 바와 같이 먼저 비준을 해놓고 미국의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하게 되는 처지에 몰리지 않도록 신중하게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동맹관계와 FTA를 직접 연계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인식부터 해야 할 것이다.
임원혁 KDI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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