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급서한 대만 '경영의 신' 왕융칭(王永慶) 대만플라스틱그룹 회장은 생전에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라는 유언을 남겼으나 유족들 사이에선 두달 가까이 상속재산을 둘러싼 흙탕물 다툼이 한창이다.
가난했던 왕 회장은 15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1954년 대만플라스틱 그룹을 설립, 대만 최대 민간기업으로 발전시켰다. 2,400억 대만달러(약 10조5,600억원)의 막대한 부를 일구며 자수성가한 왕 회장은 심근경색으로 10월15일 92세로 돌연 타계했다. 그는 대만의 여느 재벌들처럼 본처 외에 다수의 부인을 두고 자녀들도 10명 이상을 낳았다. .
그런데 왕 회장은 자신의 아호를 딴 창겅(長庚) 병원과 왕창겅(王長庚) 재단에 주력기업의 지분을 넘겨 유산다툼으로 그룹이 깨지는 사태를 막고자 했을 뿐 후계자나 재산처분 등에 대해 명확한 지침을 내리지 않았다. 왕 회장에게는 본처 궈웨란(郭月蘭) 외에 제2 부인 양차오(楊嬌), 제3 부인 리바오주(李寶珠)가 있고 사후에 네 번째 부인과의 관계도 드러났다.
본처와는 소생이 없고 제 2,3,4 부인과의 사이에 각각 5명, 4명, 3명의 자식을 낳았다. 아들ㆍ 딸들이 사장과 임원을 맡는 등 친족 경영을 해왔으나 구체적인 재산상속 유언이 없는 상황에서 본처인 궈웨란이 다른 아내와 그 자녀들에게 남편의 재산 규모를 공개하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면서 유산 싸움이 표면화 했다.
왕 회장은 생전에 강력한 카리스마로 일가의 불협화음을 무마해왔으나 부인 및 자녀들의 사이는 매우 험악했다. 더욱이 제4 부인이 등장하면서 다툼 양상은 한층 복잡해졌다. 제2 부인 양차오 소생은 2남3녀이나 대부분 그룹 밖에서 자립했다. 반면 제3 부인 리바오주가 낳은 딸 4명은 모두 그룹 안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다 왕 회장의 동생 왕융짜이(王永在)는 그룹을 형제가 함께 키운 것인 만큼 자신에게도 상속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로선 두 명의 딸이 그룹 최고기관인 ‘7인 정책결정 소조’에 들어가 있고 창겅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는 리바오주가 가장 유리하다. 이에 맞서 제2 부인 양차오의 장남 왕원양(王文洋) 등은 ‘7인 정책결정 소조’의 후계체제 역할을 부인하고 정확한 재산 내역의 공개를 요구하고 있다.
한때 여자문제로 그룹에서 밀려난 왕원양은 여러 부인의 자녀중 유일하게 왕 회장의 합법적 상속권자인 궈웨란의 사랑을 받아 그의 지원이 있으면 후계자가 될 수도 있으나 강력한 견제로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궈웨란은 법적으로 유산의 절반을 받게 된다.
현재 왕융짜이의 주도로 조정이 시도되고 있으나 결국 법정 싸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성숙 기자 han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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