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은 2년마다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갈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젊은 모색' 전을 연다. 1981년 '청년작가' 전으로 출발, 올해 15회째다. 구본창, 서도호, 이불, 이형구, 최정화씨 등이 모두 이 전시를 거쳐갔다.
올해는 예년보다 전시 공간이 2배로 커졌다. 1, 2전시실과 중앙홀에 회화, 설치, 조각,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 등 17명의 작품 250여점을 놓았다. 공간이 넓어진 만큼 작품의 스케일도, 상상력의 진폭도 커졌다.
전시의 주제는 'I am an artist'. 전시를 기획한 학예연구사 이추영씨는 "시장이 권력을 휘두르는 요즘 미술계에서 시장의 입맛에 맞는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길들여지지 않은 예술의 야생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작가들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전시장에서 맨 먼저 마주치는 것은 '바른생활' 교과서의 계몽적 이미지로 대표되는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질문이다. 오석근씨의 사진은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의 인형탈을 쓴 모델들을 어두운 화면 속에 담아 성장기의 불안과 상처를 표현한다.
이재훈씨의 대형 프레스코화 '비(非)기념비' 시리즈 역시 같은 맥락이다. 경쟁자들과의 투쟁을 거쳐 그 폐허를 짓밟고 올라선 꼭대기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이 찍혀있다.
작가들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영웅 신화를 비판하기도 한다. 중앙홀 정면에 자리한 안두진씨의 20m 길이 설치물 '바람이 기억되는 곳'은 언뜻 화려하고 장엄해 보이지만, 정작 위에서 내려다보면 나무젓가락과 면봉, 각종 플라스틱 장난감 등 싸구려 오브제들로 구성됐다.
위영일씨의 '그들만의 리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만의 배타적 영역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비판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김창열씨의 물방울이나 전광영씨의 한지 같은, 국내외 미술계 선배들의 작업도 조롱의 대상이 된다. 배트맨의 머리에 헐크의 상체, 원더우먼의 의상, 스파이더맨의 팔, 슈퍼맨의 망토를 가진, 온갖 슈퍼히어로들을 조합한 '고뇌하는 짬뽕맨'은 정작 허약한 빈틈 투성이 존재다.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완씨는 대형마트의 바구니 속에 마트에서 산 생닭 80마리를 갈아서 80개의 야구공 모양으로 만든 설치작품을 내놨다. 이진준씨는 '생의 마지막 순간 목격하게 되는 최후의 장면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영상과 사진, 조각 설치 작업으로 풀었다.
인간의 욕망 역시 젊은 작가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중앙아시아 아야스칼라 사막의 풍경을 표현한 릴릴의 3D 애니메이션 '사라져가는 풍경'은 고요한 사막 위로 쏘아올려지는 로켓을 통해 인간의 탐욕을 보여준다.
임승천씨의 설치작 '드림쉽 3호'는 희망이 사라진 물질문명을 탈출해 유토피아로 가고자 하지만, 뱃머리가 셋으로 나뉘어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는 스토리를 통해 인간 욕망의 한계를 드러낸다. 24세의 여성작가 고등어는 몸에 대한 여성들의 시선을 소재로 삼았다.
옷가게를 그린 그림에서 여성들은 동물의 가죽을 입거나 벗고 있고, 전시장 가운데 설치된 변기 안에는 관람객을 비추는 거울이 들어있다. 붉은 방 안에는 빈 옷걸이만 가득하고, 정작 옷은 손이 닿지 않는 천장에 매달려있다.
김시원씨는 예술가의 작업 자체를 작품으로 변환시켜 놓았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는 한 달간 계속해서 줄어든 자신의 몸무게의 변화를 계산해 전시장의 기울어진 파티션으로 표현했고, 매일매일 달랐던 수면시간은 34개의 각기 다른 크기의 흰색 상자로 형태를 얻었다.
관람객들은 작가의 잠 위에 앉아 쉬기도 하고, 짐을 올려놓기도 하는 셈이다. 전시는 내년 3월 8일까지. 관람료 3,000원. (02)2188-6000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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