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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생명을 지키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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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생명을 지키는 정치

입력
2008.12.0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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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東京) 북서쪽 동해안 지역인 후쿠이(福井)현 사카이(坂井)시 도진보(東尋坊)는 금강산처럼 주상절리(柱狀節理) 암벽이 절경인 유명 관광지이다. 25m 높이로 늘어선 해안 암벽을 구경하기 위해 해마다 90만 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이곳은 기암절벽 못지않은 자살의 명소이기도 하다. 연간 도진보에서 바다로 몸을 던지는 사람이 25명 안팎이라고 한다.

시게 유키오(茂幸雄) 씨는 자살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자원봉사활동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도진보를 관할하는 경찰서의 부서장이던 그가 자비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정년퇴직을 1년 앞둔 2003년에 우연히 만난 부부가 계기였다고 한다.

일본 자살 명소의 생명 지킴이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목숨을 끊으려고 도진보에 온 부부를 시게 씨는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며 설득해 돌려 보냈다. 5일 뒤 한 통의 편지가 왔다. 편지지도 구하기 어려웠던지 광고 전단 뒷면 여백에 빽빽이 쓴 편지는 일전에 목숨을 구해줘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관공서에 상담했지만 방법이 없었고 "자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부부의 유서였던 셈이다.

퇴직한 뒤 그는 자살방지상담소를 만들어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해질 무렵 도진보를 매일 순찰하고 있다. 수년 전 NHK 인터뷰에서 그는 자살을 결심한 사람의 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죽으려고 왔어도 그 사람들은 전부 마음 한 구석에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누군가 내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절벽 끝에 혼자 서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 '너무 지쳐 보인다'고 말을 걸면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그냥 울음을 터뜨린다. 설움에 복받쳐 속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울음이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4년 여 동안 그와 만나서 살아 돌아간 사람이 150명이라고 한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연간 자살자 숫자가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3만 명을 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으로 범위를 좀더 넓히면 한국의 자살률이 일본을 앞선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자살로 숨진 사람은 1만2,174명이다. 인구 10만 명당 24.8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눈 여겨 볼 것은 한일 모두 경제난을 겪는 중 자살자 숫자가 급증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외환위기로 어려웠던 1998년 자살률이 18.4명으로 전년에 비해 40% 이상 늘었다. 일본에서 자살자 숫자가 처음 3만 명을 넘어선 것도 거품경제 붕괴 이후 금융 불안이 확산됐던 98년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한 번 늘어난 자살자 숫자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득 격차가 여전하고 저소득자 사회안전망 구축이 소홀한 것도 이유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 지키는 정치 기대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에 닥친 불황의 충격파가 비정규직 노동자 감원 등으로 서서히 사회적 약자의 목을 죄어오고 있다. 일본에서는 10년 넘게 정사원처럼 일했던 계약사원이 느닷없이 재계약 불가 통고를 받고 길거리에 내몰리고 있다. 지난 주에는 "노숙자로 만들지 말라" 등의 구호를 내건 전국 노동자 집회도 열렸다. 내년에는 일본도 한국도 경제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이런 때일수록 사회적 약자를 지키는 정치, 수사(修辭)가 아니라 정말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정책을 기대해본다.

김범수 도쿄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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