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예외없이 ‘리스트’가 나돌고 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한테서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받은 정치인들의 리스트다. 출처는 애매하지만, 여의도 정가는 벌써 긴장하는 빛이 역력하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실세로 꼽혔던 이른바 ‘386 정치인’들에게 시선이 쏠린다.
일단 박 회장이 따로 작성한 리스트가 존재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태광실업 관계자는 “박 회장은 누구를 만나고 뭘 했는지 수첩에 적고 다닐 만큼 치밀하고 꼼꼼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박연차 리스트’는 근거없는 뜬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다른 버전의 리스트들이 존재할 수 있다. 우선 ‘국세청 버전’이다. 국세청은 태광실업 세무조사 과정에서 압수한 박 회장 비서의 다이어리, 일정이 적힌 메모와 스케줄 목록, 달력, 법인카드 영수증, 부재중 전화 및 통화자 기록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검찰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압수수색 과정에서도 이 같은 자료들을 확보했을 수 있다. 박 회장의 정치권 로비 대상자, 혹은 박 회장의 정치적 후견인들을 파악할 수 있는 유력한 단서들이다. ‘정치권 버전’도 있을 수 있다. 즉, 정치권에서 떠도는 이름들을 누군가 정리해 유포했을 수 있다. 과거에도 기업 비자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 같은 리스트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흔히 떠돌았다.
리스트가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순 없더라도 상당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을 개연성이 있다. 지난 주 검찰 고위관계자의 발언은 이 같은 판단을 뒷받침한다. “박 회장 사건이 복잡해서 세종증권 매각 로비보다 (파장이) 더 클 수도 있다. 박 회장은 참여정부 당시 여권 뿐 아니라 야당(한나라당)과도 친분관계를 유지하면서 일종의 보험을 든 것 같다.”
검찰은 이르면 이번 주말쯤 박 회장을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이미 고발된 탈세액만 수백억원에 이르러 구속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구속은 이번 수사의 서막에 불과할 뿐, 본 게임은 박 회장 구속 이후 정치권 로비 의혹 수사가 될 것 같다.
권지윤 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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