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서재에 책을 꽂을 공간이 없다. 책꽂이 위로는 천장까지 책이 가득 찼고, 바닥도 이미 3분의 1 정도를 점령했다. 이제는 정말, 책 일부를 정리해서 내다 팔거나 버려야 할 때가 되었다. 너무 아쉽기는 하지만, 책을 버리는 것이 크게 어색한 일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나의 책꽂이에는 3번 정도의 커다란 변혁이 있었다.
어렸을 때 보던 동화를 비롯하여 중ㆍ고교 시절에 읽었던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전집들, 그리고 틈만 나면 빠져들었던 미스터리와 SF 등의 장르소설 책들은 대학에 들어가면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누렇게 변해버린 동서추리문고 몇 권 정도에 불과하다. 그 자리를 메운 것은 세상을 알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철학, 경제학, 현대사 등의 현실을 다룬 책들이었다. 그리고 주로 민족문학 계열의 시집과 소설책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세계가 어떤 곳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대폭적인 개편이 있었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협소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당장 흥미있는 주제의 책만이 아니라, 언젠가 읽고 싶은 잡다한 책들까지도 마구 사들였다. 글 쓰는 사람에게 독서는 마르지 않는 샘이고, 언젠가는 필요에 의해서라도 들춰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속에서.
그 중에서 적어도 3분의 1은 장르소설 책들이다. 순문학 진영에서도 거장이라고 인정하는 레이먼드 챈들러나 어슐러 르 귄만이 아니라 장르문학 내에서도 싸구려라고 천대받는 소설들도 허다하다. 쓰레기에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고 믿으면서, 나름의 클리셰를 충분히 즐기면서, 나는 기꺼이 싸구려 소설들을 읽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무겁고 진지한 철학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적절한 균형이 필요할 뿐, 철학 못지않게 유희도 필요하다.
나는 그렇게 믿고, 책을 통해서 최대한의 유희를 즐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있으면 꽤 즐겁고 흥미로운 사소한 것들. 그것들은 언젠가 버려질 운명이겠지만, 나는 그 책들의 가치가 이미 내 책꽂이에서 사라져버린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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