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역사는 특이한 면이 있다. 대륙을 불문하고 역사상 거의 모든 나라는 가장 강력한 권력을 얻은 자가 황제나 왕의 자리에 올랐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흔히 일본 역사의 최고통치자를 천황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황이 최고의 권력자이던 시대는 짧았다. 오랜 역사 동안 천황은 반드시 있었으나 대개 허수아비였다. 최고의 통치자는 천황의 아버지거나, 관백이거나, 막부의 수장이었다.
막부시대 또한 막부수장이 천황 자리를 빼앗지 않은 것도 희한하지만, 막부수장도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휘하 가문의 수장이나 보좌관들이 통치자 노릇을 했다. 마치 일본의 통치자들은, 맨 꼭대기 자리에 있는 것보다, 맨 꼭대기에 허수아비를 세워놓은 채 그 밑에서 쥐락펴락한다는 불문율이라도 가졌던 것 같다. 일본처럼 통치체제 자체가 하극상인 경우는 드물지만, 세계 모든 나라 역사에서 단기간의 하극상통치는 흔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무신정변기와 세도정치기라는 제법 긴 하극상통치기가 있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왕의 권력을 넘어섰던 실세들이 여럿 있다. 최고통치자가 모호하여 심복에 의지하다 보면 그 심복들이 힘을 키워 제가 왕인 줄 알고 날뛰는 것이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하극상실세들이 철모르는 모기처럼 날뛰고 있을지도 모른다.
소설가 김종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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