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세밑 민생현장을 찾았다. 서울 가락 농수산물시장의 상인들은 "장사가 너무 안돼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에 대한 기대의 끈은 놓지 않은 듯 했다. 시래기를 파는 노점상 할머니는 이 대통령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대통령이 잘 되기를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내가 그 할머니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이 대통령이 잘 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성공하는 것이고, 성공한 대통령은 바로 그 노점상 할머니를 포함한 국민 다수의 행복으로 연결된다. 이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기도했던 많은 교회들이 장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교적 동기와 상관 없이도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각자의 삶과 행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힘겨운 생존의 현장인 가락 농수산물시장을 돌아보면서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짐의 무게를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달았을 것이다.
나날이 허약해지는 지지기반
지난 해 12월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보수성향 표뿐만 아니라 중도와 서민 성향의 표까지 얻어 당선됐다. 자영업자와 택시기사, 노점상 등 서민들의 표가 경제 살리기를 내건 이 후보에게 쏠렸던 것은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들의 위기감과 기대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선 직후 80% 대에 이르렀던 이 대통령 지지도는 대선 1년 후인 지금 20% 대로 떨어졌다. 중도층은 광우병 촛불시위 때 일찌감치 등을 돌렸다. 열렬 지지층이었던 자영업자와 택시기사들은 지금은 극렬 반대자 그룹이 되었다. 근거 없이 과도한 기대를 한 사람들도 잘못이지만 뒷날 생각하지 않고 마냥 기대수준을 높인 선거전략의 필연적 결말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추이를 보면 이탈한 중도층은 무당파 부동층에 머물거나 박근혜 의원에게 쏠리는 흐름이 역력하다. 박 의원은 이 대통령에게 실망한 보수표까지 흡수해 차기 주자로 40%가 훌쩍 넘는 지지를 누리고 있다. 일부 자동응답조사에서는 60%를 넘나든다니 그 기세가 무섭다.
그 바람에 이 대통령이 딛고 서 있는 발 밑 땅은 한없이 좁아지고 있다. 촛불시위 대홍수로 크게 쓸려나갔고 그 뒤 이런저런 실책이 쌓이면서 끊임없이 침식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세계적 경제위기의 긴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이 대통령의 발 밑 땅을 원상으로 복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박근혜 의원의 도움을 받는다면 이 대통령은 발 밑이 흔들리는 것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경제위기, 남북관계 위기 등 당면한 수많은 위기와 난제들을 헤쳐나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손잡은 박 의원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저기서 이 대통령이 박근혜 의원을 활용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양측이 선뜻 나설 수 없는 이유다. 친이, 친박 사이에 깊게 패인 골도 문제지만 비전과 문제해결 방식, 즉 솔루션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연대해 봐야 갈등만 키울 게 분명하다.
결국 이 대통령 스스로 지금 딛고 서 있는 발 밑이 얼마나 좁아져 있는지 내려다 보고 보강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국민적 기대였다. 하지만 그 기대가 흔들린 지 오래다.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에서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데도, 사회를 통합해 가는 데도, 어디를 둘러봐도 문제를 풀어가는 경륜과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 밤 늦게까지 일한 것이 정부 출범 초부터였는데 열 달이 다 된 지금 무엇이 이뤄졌는지 알 수가 없다.
무엇이 잘못인지 되돌아 보라
이 대통령은 얼마 전 장기간의 해외순방을 다녀 온 뒤 청와대 참모들에게 크게 화를 냈다. 왜 진전된 일이 없느냐는 강한 질책이었다. 그게 다 청와대 참모와 정부 각료들의 나태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서민들이 힘겨워 하는 이 세밑에 이 대통령은 임기 첫 해를 냉철하게 돌아보고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시래기 노점상 할머니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하려면.
이계성 논설위원ㆍ한반도평화연구소장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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