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의 '왕따메일' 사건과 관련, 검찰의 잘못된 불기소 처분에 대해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1심 판결이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기소 독점권을 갖고 있는 검찰의 무성의한 수사에 대해 법원이 그 위법성 여부를 엇갈리게 판단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 왕따메일, 무고… 가해자는 불기소?
1996년 LG전자 대리였던 정국정(45)씨는 회사 납품비리 의혹을 내부 고발했다가 집단 따돌림을 당했다. 회사 측이 "정씨를 사내 메일 수신대상에서 제외하고, 회사 비품도 빌려주지 말라"는 내용의 '보복성' 메일('왕따메일')을 사원들에게 일괄 발송한 것이다.
정씨는 결국 2000년 2월 직무태만 등의 이유로 해고당했다. 부당해고라며 반발하자 회사는 거꾸로 "있지도 않은 '왕따메일'을 위조했다"며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정씨를 형사고소했다.
하지만 3년간의 법정투쟁 끝에 '왕따 메일'은 실제 회사가 보냈음이 밝혀졌고, 정씨는 무죄로 확정됐다. 회사 지시로 해당 메일을 직접 작성하고 법정에서도 정씨에게 불리한 거짓 증언을 한 김모 대리는 모해위증 혐의로 기소돼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정씨의 '2차 법정투쟁'이 시작됐다. 정씨는 2003년 10월 '죄없는' 자신을 매도한 구자홍 당시 회장(현 LS그룹 회장)을 무고 혐의로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미온적이었다. '불기소 처분→정씨의 항고→고검의 재기수사 명령→다시 불기소처분'으로 돌고 돌았다.
구 회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단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고, 정씨를 고소하라고 지시한 한모 전 상무 및 고소장을 직접 작성한 이모 전 부장에 대해서도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이 과정에서 김 대리는 수감 중임에도 과장으로 진급했고, 출소 후 곧바로 복직됐다. '쳇바퀴 수사'가 반복된 끝에 이들에 대한 공소시효는 지난해 7월 만료됐다.
■ 잘못된 기소 검찰 책임 없다?
정씨는 이에 "검찰의 무성의한 수사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고, 1심은 지난 3월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경험적ㆍ논리적으로 볼 때 합리성을 심히 결여한 위법한 판단"이라며 국가가 정씨에게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한씨와 이씨의 경우, 정씨에 대한 고소가 허위사실에 기초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고 보인다"며 "그러나 담당 검사들은 신빙성 있는 자료를 무시한 채 이들의 부인 진술만을 토대로 불기소 처분을 반복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정반대였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6부(부장 김주원)는 "검사 판단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이 든다고 해도, 불기소 처분이 도저히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을 만큼 잘못됐다고는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불기소 처분으로 인해 가해자의 형사처벌에 대한 정씨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았다 해도 이는 검찰권 행사에 수반하는 부수적이고 반사적인 결과"라며 "민사소송을 통해 LG전자측으로부터 일부 손해배상을 받게 된 점 등을 고려하면 정씨의 정신적 고통은 검찰의 불기소와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검찰의 잘못된 '불기소'로 인한 국가 배상책임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지적이다. 재경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1심 판결은 검찰의 잘못된 기소뿐 아니라 불기소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함을 명시해 하나의 의미있는 판례가 될 만했는데, 항소심이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판단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정씨는 즉각 상고할 뜻을 밝혔다. 정씨는 "한씨와 이씨를 조사한 검찰 수사관을 증인으로 신청하자 재판부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기각했다"며 "재판의 불공정성이 의심되기까지 한다"고 주장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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