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도 없이 고시원을 전전하던 A씨는 지난달 경찰 검문검색에 걸렸다. 예전 상해죄로 선고 받은 벌금 95만원을 내지 않아 수배 상태였던 것. 정부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터에 목돈을 구할 방도도, 도와줄 친지도 없었다.
결국 일당 5만원씩 19일을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정기적으로 신장 투석을 받아야 하는 성치 않은 몸으로, 지난달 25일 수원구치소에 들어갔다.
경기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에 자리잡은 수원구치소. 9층과 8층짜리 대형 쌍둥이 빌딩에 현대식 시설을 갖춘 이 곳의 노역수형자 사동은 요즘 포화상태다. A씨처럼 벌금을 못내 강제노역 하러 오는 이들이 하루 평균 10여명에 이른다.
올 초 120명 수준이던 평균 수용인원은 11월 말 현재 180명 대로 50% 이상 급증했다. 구치소 전체 수용인원 중 12%가 노역수형자일 정도다.
"벌금을 내는 대신 노역을 하는 수형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걸 보면서 경기침체나 정말 심각하구나, 서민들 살기가 정말 팍팍하구나,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수원구치소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법무부가 국정감사에서 국회 법사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3만4,019명, 지난해 3만3,571명이던 전체 노역수형자 수가 올 들어 7월까지 2만7,020명에 달했다. 연말까지 집계하면 4만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벌금형을 대신하는 노역은 판사가 형 선고 때 피고인의 경제상황 등을 고려해 정해준 일당(통상 5만원)에 따라 기간이 산정된다. 물론 일당 1억원의 '귀하신 몸'도 있다. 조세포탈 벌금 299억원을 내는 대신 299일간의 노역을 택한 B씨가 그런 경우다.
그러나 수원구치소에서 B씨를 제외한 노역수형자 대부분은 절도, 폭행,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등으로 100만원 안팎의 벌금형을 받은 이들이다. 단돈 10만원이 없어 몸으로 때우는 경우도 있다.
구치소 관계자는 "끼니 챙겨 먹기도 어려워서 예전에 안 낸 벌금을 이용하거나 사소한 사건을 저질러 일부러 붙잡혀 들어오는 사람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노역자들은 미결수 사동과 분리된 20여개의 노역수형자용 거실(주거공간)에 수용돼 7~10명이 한 방을 쓴다.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 빼고 8시간을 일한다. 취사, 세탁, 청소, 건물 관리 등 대부분 단순 작업이다.
금용명 보안계장은 "몸이 성치 않아 이런 단순노역조차 못하고 거실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병원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교도관들이 올해 가장 인상적인 노역자로 꼽은 C씨가 대표적이다.
벌금 120만원(폭력, 향토예비군법 위반)을 못내 8월 구치소에 왔는데, 자기 몸조차 가누지 못해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다. 구치소측은 C씨에게 일 한 번 못시키고 병원비 600만원만 떠안아야 했다.
경제난이 가중되면서 "벌금형보다 차라리 집행유예가 낫다"고 푸념하는 수형자들이 적지 않다고 교도관들은 전했다. 징역형에 해당하는 집행유예가 더 중한 형이지만, 벌금형 받아봐야 낼 돈이 없어 노역을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구치소 입장에서도 노역수형자 급증은 부담스럽다. 업무 가중과 공간 부족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특히 부산구치소의 경우 10월 현재 1,530명 정원에 수용 인원은 2,300명(수용률 150%)에 이른다. 부산구치소 관계자는 "벌금을 못 낸 노역자 유치자까지 구치소에 수감되면서 수용률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법무부는 현재 벌금형 미납시 부과되는 노역형 대신 사회봉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회봉사를 벌금 납부 회피 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300만원 이하 벌금에만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현재 생활보호대상자나 장애인, 재난피해자 등에만 적용되는 벌금 분납제를 확대 실시하거나, 5만원으로 고정된 노역 일당을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수원=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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