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헌법이 정한 예산안 처리 시한(회계연도 개시 30일전, 12월2일)을 번번히 어기는 이유는 뭘까. 연례 행사처럼 반복되는 현상에 대해 원인을 면밀히 파악해 근본적으로 개선책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의정자료집에 따르면 1999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법정 처리 시한을 지킨 것은 2002년 단 한번 뿐이다. 2002년에는 대선이 있었기 때문에 시한을 지켰다. 1989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20년 간 시한을 지킨 것은 불과 5번이다. 국회가 헌법 조항을 사문화시킨 셈이다.
이 같은 악습이 되풀이 되는 데는 여러 복합적 이유가 있다. 우선 여야의 예산안에 대한 정략적 접근이 원인이다. 예산안이 정치 공방의 대상이 되고, 특히 야당은 예산안 처리를 여당에 대한 견제수단이나 정치협상의 지렛대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예산안이 해를 넘기기 직전인 12월31일에야 겨우 처리됐던 2004년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 문제로 여야가 극한 대치를 하는 상황에서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예산안을 이와 연계 시킨 때문에 의결이 늦어졌다. 다른 경우도 대부분 그런 식이다. 김형준(정치학) 명지대 교수는 "국회가 정치적 편의주의에 빠져 법정기한을 어기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근본적으로 예산안을 보는 철학적 시각이 달라서 그런 것도 있다. 올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감세안이나 복지예산 확대 등을 두고 충돌을 벌인 것이 그런 사례다.
무엇보다 구조적 문제가 크다. 헌법상 국회의 예산심의 기간은 60일인데 실질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더 짧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국회는 국정감사를 해야 하는데 국감 대상 선정, 증인채택 등 국감 준비만 한 달여가 걸린다. 또 정기국회 중 추석연휴가 끼어있다. 결국 국감은 10월이나 돼서야 하게 되고 국감 이후 교섭단체 대표연설, 대정부질문 등의 일정을 소화하면 예산 심의는 11월 중ㆍ하순에야 본격 시작할 수 있다.
올해 예산 심사도 11월19일 예결위 종합정책질의가 시작되면서 본격 착수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구조적으로 법정 시한까지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토로할 정도다. 이 때문에 국회운영제도개선 자문위는 최근 정부의 예산안 제출시기를 현재 '회계연도 개시 90일 전'에서 '120일 전'으로 당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장영수(헌법학) 고려대 법대 교수는 "현 시스템으로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예산안 심의를 하기가 어렵다"며 "예결위 상설화 등을 통해 연중 심사시스템을 갖추고 감사원의 국회 이관으로 예산 심사의 전문성을 높이는 등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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