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9일 오전 10시 대구 서구 평리동의 한 주택 앞. 여자아기가 혼자 울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최○○라는 이름과 생년월일(당시 21개월)이 적힌 쪽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버려진 아이가 틀림 없었다.
신고를 받은 대구 서부경찰서는 수소문 끝에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한 아동복지센터에 최양을 맡긴 후 유기아 발생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사건을 일단락했다.
한 달 뒤인 9월 말 복지센터에 최양의 할머니라고 주장하는 익명의 전화가 걸려왔다. 10월 중순에는 이모(54ㆍ여ㆍ대구 달서구)씨가 찾아와 "애를 데려가겠다"고 떼를 썼다. DNA 검사 끝에 친할머니로 확인된 이씨는 지난달 7일 손녀를 데려갔다.
이씨는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주장했지만, 손녀의 위탁보호 사실을 확인하고도 보름 뒤에야 나타난 것 등은 경찰의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경찰조사 결과, 이씨는 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버린 뒤 죄책감에 시달리다 뒤늦게 찾아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8월 초 며느리가 집을 나가고 아들마저 일자리를 찾아 경남 거제도로 떠난 후 손녀 최양을 혼자 떠맡았다. 식당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처지에 어린 손녀를 돌보는 게 여간 버거운 게 아니었다.
이씨는 고민 끝에 평소 알고 지내던 무속인 이씨(47)를 통해 최양을 버렸다. 그러나 핏줄은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변이라도 당할까 싶어 "아기가 버려져 있다"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추석과 주말 때 가끔 들르는 아들이 손녀의 행방을 물을 때 "어디 좀 맡겨놨다"고 둘러대면서 가슴을 파고드는 죄책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결국 이씨는 버렸던 손녀를 다시 찾기로 했다.
이씨는 경찰조사에서 "한 순간 생각을 잘못해 손녀를 내다버렸지만, 아기 없이는 살 수 없었다"면서 "앞으로 정말 잘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이씨는 현재 식당 일을 그만두고, 아들이 주는 생활비로 손녀를 돌보고 있다.
경찰은 3일 이씨와 무속인 이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및 유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먹고 살기 힘들어 생긴 일이라 비난만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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