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백화점이 주도했던 신사복 '그린프라이스제'(가격정찰제)가 1년여 만에 파행으로 끝났다. 신상품이 나오자마자 흥정만 잘하면 30%씩 깎아주는 임의할인 관행을 바로잡고 가격거품을 빼겠다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 신사복 부문의 거듭되는 매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롯데 스스로 그린프라이스제를 사실상 파기한 것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지난달 28일 정기세일에 들어가면서 신사복의 '시즌오프'를 전격 단행했다. 시즌오프는 일시적으로 제품 가격을 할인해주는 세일과 달리, 시즌오프 시점부터 항구적으로 제품 가격을 내리는 것으로 시즌 마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신사복업체는 올해 가을ㆍ겨울 상품 시즌오프를 12월 말이나 1월 초로 예정했었다.
롯데백화점 본점 한 신사복매장 관계자는 "세일 당일인 28일 오전에야 (시즌오프) 통보를 받았다"면서 "원래 12월 말이나 1월께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고객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했는데, 이미 옷을 산 고객에게 뭐라 변명할 지 난감하다"고 말했다.
롯데 관계자는 "신사복 업체들이 매출 부진 만회를 위해 시즌오프를 먼저 협의해 왔다"고 밝혔지만, 한 신사복업체 영업팀장은 "사전 협의는 없었고 백화점이 먼저 요구했다. 사실상 '백화점 마음대로' 아니냐"고 했다. 현대, 신세계 백화점도 롯데의 전격적인 결정에 부랴부랴 시즌오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롯데 관계자는 "시즌오프의 개념이 임의세일 없이 1년에 두 차례 가격인하를 단행하는 것인 만큼 그린프라이스제의 포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상 시즌오프는 한 시즌을 마무리할 때 재고처리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더 이상 신상품이 아니라는 의미가 된다.
지난 여름 세일 때 그린프라이스제 정착을 위해 세일기간 중 신사복 부문은 참여하지 않은 이유다. 결국 임의할인을 없애 정상가 판매비율을 높임으로써 신사복의 가격거품을 빼겠다고 시작한 그린프라이스제가 지나치게 빠른 가격인하로 정상가 판매 기간만 단축하는 결과를 낳은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불황과 비즈니스캐주얼 확산 등으로 매출 부진 수렁에 빠진 제조업체와 패션부문 부진을 메우려는 백화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 비정상적인 시즌오프를 만들어냈다"면서 "단기적으론 매출 확대가 가능하겠지만 신사복 판매 관행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키운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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