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오랜만에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헌재 전 경제 부총리가 쏟아낸 현 정부에 대한 고언(苦言)의 파장은 대단했다. 현 정부의 위기 대응을 초기 진화에 실패한 남대문 화재의 참상에 비유하는 등 정곡을 콕콕 찌르는 발언은 과연 ‘이헌재’다웠고, 여론은 그의 발언에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마치 이 전 부총리의 말 하나 하나가 금과옥조라도 되는 것처럼.
본보의 설문 조사 결과(12월1일자 1, 3면)도 그랬다. 차기 경제팀 사령탑에 누가 적합하겠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이 전 부총리를 추천했다. “10년 전 구조개혁 해결사로 위기 극복의 선봉장에 섰듯, 지금의 위기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여기엔 ‘이헌재 향수’가 있다. 10년 만의 위기 재발, 그리고 정부의 안일한 대응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그 때는 달랐는데…”를 되뇌는 모습이다.
무릇 향수란 나쁜 기억은 걸러낸 채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법. 그가 환란 극복의 1등 공신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도 적지 않다. ‘이헌재 사단’으로 대표되는 금융계 군집 현상을 부추겼고,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부동산 거품을 조장하고 카드대란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도 받는다. 무엇보다 이 전 부총리 스스로 “주변 사람들은 내가 다시 공직에 나가지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밝혔듯, ‘이헌재의 귀환’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지금의 어려운 경제 현실이 향수를 자극하는 게 불가피하다지만, 이럴수록 좀 더 냉철하게 되물을 필요가 있다. 과연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이헌재’인지, 아니면 ‘이헌재의 장점’인지. 이 전 부총리가 언젠가 밝혔던 “구조조정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 저항을 이겨내려면 원칙과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만 소중히 담고 갔으면 한다.
이영태 경제부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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