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엊그제 국무회의에서 각 부처 장관들에게 연말까지 산하 공기업의 구조조정 실적을 보고하라고 다그쳤다. 정부가 집권 초기 핵심과제로 잡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공기업 개혁이 경제불황 등 사회경제적 여건 악화 등에 묻혀 흐지부지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일부 공기업은 경기침체를 내세워 조직 슬림화와 예산 절감 경영쇄신 일정을 슬그머니 내년으로 미루거나 아예 없던 일로 하려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 대통령이 이런 움직임에 쐐기를 박은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다.
기업부도가 속출하고 실업자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공기업까지 가세해 조직 축소와 감원 등의 구조조정을 서두르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공기업 개혁은 몇 명 자르고 비용 몇 푼 줄이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주인 없는 조직과 느슨한 감시를 틈타 인력과 예산을 마구 늘리며 방만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일삼아온 조직문화 전체를 물갈이하는 게 요체다. 내부저항을 고려할 때 웬만한 용기와 의지로는 감당하기 어렵고, 그래서 집권 초기가 아니면 해 낼 수도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 대통령이 상생적 구조조정을 말한 뜻은 이해되지만, 농촌공사의 구조조정 사례를 배우라고 말한 것은 문제를 오도할 소지도 있다. 공사의 역할 축소로 15%의 인원을 감원하면서 남은 직원들이 임금인상분을 퇴직자들을 위해 내놓았다는 '미담' 정도의 얘기를 모범사례로 인용함으로써 '개혁=감원'이라는 측면만 부각됐기 때문이다. 공기업들이 내년 신규채용 규모를 대폭 줄인 것도 이런 인식이 낳은 부정적 소산이다.
방만한 경영을 뜯어고치다 보면 인원 감축을 피할 수 없겠으나, 개혁의 그림은 그보다 훨씬 커야 한다. 먼저 과도한 복지 등의 특권적 지출부터 '희생적으로' 줄이고, 조직의 기능과 역할을 전면 재조정ㆍ개편한 뒤 조직의 신진대사까지 감안해 인력수급계획을 마련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기존인력 보호 차원에서 신규채용을 줄이는 것은 또 다른 도덕적 해이다. 우리가 이 대통령에 대해 종종 쓴 소리를 하지만, 공기업 개혁을 경제위기와 뒤섞을 수 없다는 이번 지적은 백번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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